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급속하게 침체국면에 빠뜨렸고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은 과감한 재정 확대와 정책 공조로 대응했다. 금융위기를 큰 충격 없이 조기에 극복한 것으로 평가되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건전하게 유지해 왔던 재정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감세와 재정 확대로 재정 건전성은 다소 훼손됐지만 빠른 경기 회복에 힘입어 정부는 2013년에 균형을 회복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반면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인류 문명의 발원지인 그리스와 유럽연합(EU)에서 국민소득 3위인 이탈리아가 재정위기를 겪고 있으며,여기에 미국의 재정상황도 불확실성이 커져 세계 경제의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모습이다.

제국의 몰락은 '한밤의 도둑과 같이' 찾아온다는 리얼 퍼거슨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신해룡 교수(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의 《예산개혁론》은 외국에 비해 우리 재정은 상대적으로 건전하다고 낙관하거나 재원 조달에 관한 논의 없이 '반값 등록금'과 '무상복지 시리즈'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1세기 나라살림 개혁의 청사진'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현재 글로벌 경제가 재정적자 숙취로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서 언제 다가올지 모를 '부채 쓰나미'를 미리 예방하고,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각 분야에 현안이 있을 때마다 모두 재정을 통해 해결하려는 재정중독증(fiscal alcoholism)에서 벗어나기 위한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나라살림 개혁에 나설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10년은 경술 국치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였다. 지난 100년의 세월 중에서 앞의 반세기는 나라를 지킬 힘조차 없어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분단을 경험한 반면,뒤의 반세기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이 책의 서론은 경제발전의 역사와 함께한 우리 재정의 역할과 남겨진 과제를 짚어 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대비한 재정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2007년 '국가재정법' 제정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선진화된 재정제도로의 변화를 모색했다. 중기재정 운용,하향식 예산편성,성과중심의 재정 운용 등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들 제도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으며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이 책에서는 '재정건전성 확보''재정의 경기조절기능 강화''국가재정의 효율적 배분 도모''사회통합을 위한 재정의 역할 강화''재정의 투명성 제고를 통한 재정민주주의 구현'의 다섯 가지 예산개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개혁 방향에 따라 '중기재정 운용의 실효성 제고'에서부터 '국회의 합리적인 예산 · 결산 심사절차 마련'에 이르기까지 정부뿐만 아니라 예산과 결산의 심의 · 의결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를 포함한 재정제도 전반에 대한 10대 실현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현재 호서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신해룡 교수는 33년간의 공직 기간 대부분을 예산정책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 왔다. 국회에서 초대 예산정책국장과 초대 예산분석실장,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국회예산정책처장을 역임하면서 관료사회는 물론 학계에서도 '예산통'으로 정평이 나있다.

국가 재정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뇌와 풍부한 현장 경험이 담긴 《예산개혁론》은 저출산 · 고령사회,남북통일 등 머지 않은 미래에 직면하게 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재정의 역할을 모색하고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데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더불어 최근의 논쟁이 뜨거운 무상복지,감세 등의 재정문제에 대해 현명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제시해 줄 것이다.

이만우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 차기 한국경제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