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초빙광고까지…"후계자 어디 없나요"
작년 7월 일본경제신문과 요미우리신문 1면에는 이례적인 광고가 실렸다. 기업 후계자를 찾는다는 광고였다. 광고주는 도쿄증시 1부 상장 업체인 자동차 부품업체 유신(有信).1926년 창업해 연 매출 50억엔(500여억원),종업원 수 3672명에 이르는 중견기업이다. 가업 승계가 상례화돼 있는 일본에서,그것도 1부 상장 업체가 후계자를 공모하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딸 하나를 둔 2세 경영인 다나베 고지 회장의 고육책이다.

이 회사는 후계자의 자격 조건으로 △30~40대 △영어 능통 △뛰어난 경영 수완 △365일 세계 출장 가능 등 네 가지를 걸었다. 연봉은 6000만엔(8억5000만원).이 같은 광고가 나가자마자 외국인을 포함해 총 1722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그러나 이 회사는 1년이 다 되도록 아직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발모 시술 업체인 '리브21' 역시 최근 '눈에 띄는' 행사를 가졌다. 창업한 지 36년째에다 회원 수가 13만7000명에 달하는 무차입 우량 기업인 이 회사도 후계자가 없어 기자간담회를 열고 언론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헤드헌팅 업체에도 그런 사람을 찾아 달라고 의뢰했다. 이 회사도 최소 3000만엔(4억3000만원)의 연봉을 보장할 테니 100년 기업을 만들어 달라고 조건을 걸었으나 역시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장수기업의 본고장'인 일본 중소기업들에 가업 승계 비상이 걸렸다. 가업을 이을 후계자를 찾지 못해 유신이나 리브21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기업들이 늘고 있다. 후계자를 못찾아 문을 닫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미쓰비시리서치센터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국세청 등록 기업 214만개 중 연간 폐업 기업 수는 7만7000개(3.6%)에 달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경영난에다 시장 전망 불투명 등 다양하다. 그중 '적절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서' 폐업하는 회사가 5개 중 1개꼴(24.4%)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뚜렷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염동호 일본 호세이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 세계 200년 이상 장수기업 중 절반이 일본 기업일 정도로 그동안 일본에서는 가업 승계와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자연스러웠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학력 후계자들이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데다 경제난과 시장 상황 불투명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이 같은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튼튼한 중소기업을 경제의 기둥으로 삼고 있는 일본 정부에도 '가업 승계 불안'은 크나큰 걱정거리다. 일본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잠정적 후계 경영인들이 가업에서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같은 해 10월 '중소기업 경영 승계 원활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에는 증여 · 상속세 혜택을 받는 중소기업 범위를 제조업의 경우 종업원 300명 이하에서 900명 이하로 확대하고,경영 후계자가 주식,사업용 자산을 매입하는 자금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장수기업의 가업 승계 실패 사례는 이제 가업 승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한국도 경제난까지 겹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지원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오사카=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