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가난ㆍ장애 이겨낸 사출금형의 달인
원용기 비즈엔몰드 대표(38)는 '최연소 명장'이다. 그는 지난 2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사출금형(射出金型 · 플라스틱을 녹여 주입한 후 같은 모양의 구조물을 찍어내는 금속 틀) 분야 명장 증서를 받았다. 1986년 제1호 명장 선정 이후 30대 명장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 대표는 올해 명장 심사를 통과한 24명의 평균 나이(55세)보다 열일곱 살이나 젊다. 고용부가 명장 심사 요건 가운데 '동일 분야 최소 근속연수'를 20년에서 15년으로 낮추면서 원 대표가 최연소 명장으로 탄생했다.

원 대표는 자신이 명장이 된 비결을 '기록하는 습관'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배운 금형 제작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했다. 끊임없이 연구하며 이 기록을 보강해 나갔고,마침내 결점없는 방법을 찾았다고 판단하면 이를 매뉴얼로 만들었다. 원 대표는 "공들여 만든 매뉴얼이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덕이 컸다"며 "맛집마다 공개하지 않는 식재료가 하나씩 있는 것처럼 이 매뉴얼에는 쉽게 공개할 수 없는 생생한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경기 화성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혹독한 가난이 준 상처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떨쳐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원 대표 가정은 두 형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열악한 환경은 원 대표의 몸에 장애까지 남겼다. 초등학교 때 감전사고를 당해 지금도 손가락이 하나는 보통 길이보다 짧고 하나는 옆으로 휘어져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쉬어본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자기계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게 원 대표의 얘기다.

2년제 인천기능대학을 졸업한 그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공부해 산업기사,기계가공기능장,기술지도사,ISO(국제표준화기구) 국제심사원 등 각종 자격증을 따냈다. 이를 활용해 2004년엔 '학점은행제'로 기계공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학점은행제는 학교 밖에서의 다양한 학습과 자격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일정 기준을 넘으면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위를 주는 제도다.

내친 김에 호서대 글로벌창업대학원에 입학해 2007년 경영학 석사학위도 땄다. 이때 배운 경영학 지식을 바탕으로 2009년 비즈엔몰드를 차렸다. 비즈엔몰드는 사출금형 제작뿐 아니라 창업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는 "명장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게 회사를 차린 큰 이유 중 하나"라며 "중소기업체에서는 최고경영자(CEO)가 돼야 자신이 원하는 특정 분야에 매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 대표는 단순한 엔지니어가 아니다. "사출금형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에 매진하고 있다. 사출금형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이 덕에 가난한 사람도 부자와 똑같은 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출금형은 당연히 필요하고 내가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며 "죽을 때까지 사출금형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