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카드엔 동양화만…그래픽·캐릭터로 영역확장
해외시장 개척하는 딸
뛰어난 사업감각으로…美·中 매출 안정궤도
서울 을지로 3가의 비핸즈(구 바른손카드) 사옥에 들어서면 수백여종의 카드와 청첩장이 한쪽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캐릭터를 넣은 젊은 감각의 제품부터 자개와 고급 실크를 박아 넣은 프리미엄 제품까지 전시된 공간은 '카드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3층에 위치한 디자인 자료실에는 40여년간 이 회사가 제작해 온 수만여종의 카드가 오래된 보물처럼 보관돼 있다. 창업주인 박영춘 회장(72)은 새 디자인 자료를 점검하고 있는 박소연 부회장(50)을 바라보며 "학창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방학마다 여기서 심부름을 하던 큰 딸이 이제는 든든한 후계자가 됐다"며 흐뭇해했다.
◆디자인 불모지를 개척하다
비핸즈는 청첩장 분야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다. 해마다 결혼하는 예비부부 10명 중 7명이 이곳을 찾는다. 박 회장은 일반 카드 사업으로 시작해 청첩장 전문 기업으로 변신하며 업계를 이끌어왔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자란 박 회장이 상경해서 카드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0년.당시만 해도 풍속도 미인도 등 오래된 동양화가 그려진 연하장이 태반이었다. 어려서부터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박 회장은 이런 카드 시장에 디자인 개념을 불어넣었다. 서양화와 그래픽을 새긴 카드를 만들었고,디자인 관련 대학 교수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시킨 디자인 카드도 출시하며 시장을 바꿔갔다.
1980년대 후반에는 '바른손 팬시'를 출시하며 문구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외산 캐릭터밖에 없던 시절 국산 캐릭터를 넣은 노트 등 문구제품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바른손팬시의 성공 덕분에 '팬시'는 캐릭터나 디자인을 가미한 문구의 대명사로 통했다.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장녀인 박 부회장은 이때만 해도 가업을 이을 뜻이 없었다. "1990년대 초 대학 졸업 후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하지만 피는 못 속이는지 디자인 공부를 하면 할수록 카드 디자인 분야에 흥미가 가더라고요. "
결국 서른다섯살이 되던 1996년 귀국한 박 부회장은 캐릭터 부서 팀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합류하자마자 대기업과의 라이선싱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는 등 뛰어난 사업감각을 발휘했다. 박 회장은 "제품 질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바꾸고 전략적 마케팅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고 했다.
◆글로벌 감각으로 사업 재건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날벼락을 맞았다. 갑작스럽게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부도를 내고 말았다. 박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문구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박 부회장은 "어렵게 키운 캐릭터와 제품라인을 매각하고 슬퍼하는 아버지를 보며 남은 카드 사업만큼은 어떻게든 되살리겠단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박 회장과 박 부회장은 신규 시장 개척에 매달렸다. 온라인 카드 사업을 꾸려 전자상거래 기반의 청첩장 판매 모델을 만들었고,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 미국과 중국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해외 매출은 꾸준히 늘었고 고꾸라졌던 매출은 몇 년 만에 다시 안정 궤도에 올랐다.
두 부녀는 요즘 새로 시작한 판화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마티프린팅'이라는 특허 인쇄기술을 활용,원하는 그림을 질감까지 그대로 재현해낸 작품을 만드는 사업이다. '미술품은 원작 아니면 모조품'이라는 편견 탓에 아직 본격적인 판로 개척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끈끈하게 뭉쳐 사업을 다시 일으킨 두 부녀는 또다른 성공을 확신한다고 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