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영업점 중 상당수가 예기치 못한 정전에 대비할 수 있는 무정전 전원공급장치(UPS)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초유의 단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입은 점포 400여곳도 UPS가 아예 없거나 UPS 배터리를 제때 갈아주지 않은 게 원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신한은행 정전대책 안 세워

신한은행은 전체 950여개 영업점 중 850여곳에 UPS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비용 부담이 크고 UPS를 넣을 만한 공간이 제한적이란 이유에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과거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UPS를 도입했지만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오히려 영업점 내 UPS를 철거해 왔다"며 "다만 수시로 단전될 수 있는 섬이나 오지 등 전체 영업점의 10% 정도에선 UPS를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한국전력으로부터 지역 영업점의 정전 예고를 받으면 본점의 발전기 탑차를 현지에 급파하는 한편 임대 발전기를 동원해 전기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본점의 발전기 탑차는 한 대뿐이다. 이 관계자는 "비상계획이 있지만 최근과 같은 정전사태는 일종의 천재지변이어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다른 은행들도 신한은행을 벤치마킹해 UPS를 철거하려던 시점이었는데 전국적인 정전사태가 터져 곤혹스럽다"고 전했다.

우리은행의 전국 930개 영업점 중 30여곳도 정전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부 점포의 내부 면적이 너무 좁아 UPS와 배터리를 넣을 공간을 찾지 못했다"며 "영업점 건물주들이 배전공사가 까다로운 UPS를 설치하지 못하게 막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계 관계자는 "요즘엔 증권사와 저축은행들도 UPS를 필수적으로 설치하는 마당인데 시중은행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UPS는 용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은행들이 주로 쓰는 10㎾짜리는 200만원 정도다. 별도로 배터리 비용이 200만원가량이다. UPS와 배터리가 차지하는 면적은 최소 5~6㎡다.

◆"유지보수 어렵다"

국민은행과 농협 하나은행 외환은행 등은 전국 모든 점포에 UPS를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유지보수를 해주지 않아 이번 정전사태 때 '먹통'이었던 UPS가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UPS는 최상의 상태일 때 2시간 정도 가동되는데 평소 정기적으로 배터리를 갈아주고 관리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며 "이번 정전사태 때 영업점에 설치된 UPS 중 일부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재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통상 UPS 배터리를 3년마다 교체해주고 본점에서 각 지점의 UPS 상태를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UPS는 비상 시에만 가동하는 장비이기 때문에 평소 관리가 소홀할 수 있다"며 "이번에 은행 문을 닫기 직전 전기가 끊겼기에 망정이지 오전이나 점심 때 단전됐다면 큰 혼란 발생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이 정전과 같은 비상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 본점과 전산센터엔 반드시 UPS와 비상발전기를 갖춰야 하는데 이를 각 지점에까지 의무화하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은행들의 비상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미흡할 경우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

uninterruptible power supply.전압 변동이나 주파수 변동,순간 정전,과도 전압 등으로 인한 전원 이상을 방지하고 항상 안정된 전원을 공급해주는 장치.예기치 못한 정전사태 때 최대 수시간 종전과 같은 전력을 유지해준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