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달러 사재기' 하지마라…이번에도 낭패 본다
원 · 달러 환율이 4개월 만에 1100원대로 올라섰다. 으레 전망치도 상향 조정돼 연내에 1200원,1300원,심지어 16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잇따르고 있다.

앞으로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현 외환시장 움직임에 대한 진단부터 전제돼야 한다. 올 들어 약세를 보이던 미 달러가치가 최근 들어서는 강세로 돌아섰다. 그렇다고 해서 기조적으로 '약세'에서 '강세'로 정착됐다고는 볼 수 없다. 주요 통화에 대해 달러가치를 알 수 있는 패러티 지수가 74 내외에서 76 정도로 돌아섰을 뿐이다.

또 하나의 특이한 현상은 경제여건이 좋은 신흥국 통화에 대해 달러 강세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통화 가치가 경제여건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이론적 토대에서 보면 달러가치는 신흥국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여야 정상적이다. 달러 강세 현상에 다른 특수한 요인이 결부돼 있다는 점을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최근 증시를 비롯한 신흥국 금융시장의 자본 유출입 현황을 보면 외국자금의 이탈이 심하다. 이 때문에 경제여건에 관계없이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가고 있다. 이번에는 유럽계 자금이 주도하고 있는 점이 종전과 다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외국자금 이탈의 약 60%를 유럽계 자금이 차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유럽재정 위기가 1년 반 이상 지속되고,그 해결방안이 민간투자 주체에 책임을 지는 쪽으로 바뀌면서 유럽 금융사들에 자본 부족이 발생하거나 이들이 자본예비 확충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이 마진 콜(margin call · 증거금 부족)을 당하면 디레버리지(deleverage · 투자자산 회수) 대상을 경제여건이 괜찮은 국가 가운데 고르게 된다. 그래야 자본 확충에 따른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되새겨 보면 당시 미국에서 위기가 발생한 만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은 피해갈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오히려 미국에서 이탈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겹치면서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아시아 금융상품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투자자들도 쉽게 동조해 금융사들이 추천한 상품에 대거 가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가 하락폭으로 본다면 위기 진원지인 미국의 다우존스지수의 하락률이 50%에 미치지 못한 반면 한국 코스피지수는 65%,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75% 폭락했다. 위기 발생 이후 달러당 85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봤던 원 · 달러 환율은 거꾸로 1600원까지 올라 '키코(KIKO)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전형적인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했다.

당시 국내 금융사들이 이 같은 낭패를 본 것은 크게 두 가지 점을 읽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하나는 마진 콜을 당하면 경제여건이 좋은 곳을 디레버리지 대상으로 선택한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미국 투자금융사(IB)들이 고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흥국 투자비중과 레버리지 비율(leverage ratio · 증거금 대비 총투자 금액)을 상당히 높게 가져갔다는 점이다.

환율이 교역국 통화와의 상대비율이라 하더라도 최근의 달러 강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당사국,즉 미국 요인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경기가 부진하고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기준금리도 '제로(0)' 수준이다. 당분간 경기와 쌍둥이 적자는 개선될 여지가 적고 기준금리는 2013년 중반까지 '제로(0)'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천명해 놓은 상태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달러 사재기' 하지마라…이번에도 낭패 본다
특정국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되기 위해선 글로벌 투자비중과 레버리지 비율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미국 금융사들과 달리 유럽 금융사들의 투자패턴은 보수적이어서 이 두 지표가 모두 높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유럽재정 위기가 지속되겠지만 3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처럼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작다.

이 때문에 리먼 사태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원 · 달러 환율이 1600원대에 올라간 점을 감안해 이번에도 그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안이한 시각이라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유럽 금융사들이 외부지원, 투자자금 회수 등 어떤 형태로든 자본 확충만 마무리하면 곧바로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에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이제부터는 환율수준보다 변동폭 확대에 따른 환위험 관리에 신경써야 할 시점이다. 이번에도 1600원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을 믿고 달러 사재기에 나선다면 3년 전 2000원대로 올라갈 것이라는 잘못된 예상을 믿고 대거 달러를 사두었던 일부 부유층들이 이후 환율 급락 과정에서 크게 낭패를 봤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