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전력소비가 급증했을 때에도 잘 견뎌냈던 전력 공급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더위가 한풀 꺾여 전력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상당수 발전소들이 정기 정비에 들어간 탓이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해 하루종일 허둥댔다.

◆전국이 정전 사태

15일 오후 4시15분께 서울 역삼동 일대에 정전사고가 발생해 GS타워 캐피탈타워 포스틸타워 등에 입주한 기업들이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 이 빌딩에 입주한 상점들도 정전사고로 불이 꺼져 상인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한솔그룹 등이 입주해있는 캐피탈타워는 정전사고가 발생하자 급히 비상발전기를 돌려 엘리베이터와 사무실의 일부 조명에 전력을 공급했다. 건물 입주사 관계자는 "인터넷까지 먹통이 되는 바람에 업무가 30여분 동안 마비됐다"고 전했다.

포스코파워 스마일게이트 등이 입주해 있는 포스틸타워는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엘리베이터를 정상운영했다. 하지만 사무실 조명 일부에만 불이 들어와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 강남에서는 30여분 만인 오후 4시46분께 전기 공급이 정상화됐다.

광주 · 전남 지역은 13개 시 · 군에서 24만가구가 정전됐다. 충남 · 북에서도 일부 지역의 전기 공급이 끊겼다. 대구에선 1350여개의 교통 신호기 가운데 110여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시내 곳곳에 교통 경찰이 나와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했다. 일부 교차로에선 차량이 뒤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전국적으로 322만가구가 단전으로 혼란을 겪었다.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 수송동 국세청 청사는 오후 4시45분께 정전돼 조명과 컴퓨터가 꺼졌다. 정전은 40여분간 지속되다 오후 5시27분께 정상화됐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면서 일부 직원이 갇혔다. 2002년 완공된 국세청 건물은 정전 시 자가발전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이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공단은 가동중단

포항 철강공단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해 316개 철강 관련 업체들이 피해를 입었다. 공단 관계자는 "이날 오후 4시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한 때 조업을 전면 중단했다"고 말했다. 공단 내 철강 가공업체인 제일테크노스 관계자는 "자가 발전시설이 없는 공장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조업 중단으로 피해가 일파만파로 번질 뻔 했다"고 전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경남 김해지역에서도 정전으로 공장이 멈췄다. 경북 구미공단에선 정전 피해로 불량품이 발생해 생산라인에 있던 제품 일부를 폐기했다. 대전대화공단,인천남동공단,충북산단에서도 피해 신고가 잇따랐다.

통신 장애도 접수됐다. 대구,광주에서 오후 5시무렵 KT 전화가 일부 불통됐다. 이동통신사들은 예비 배터리를 가동해 대규모 통신두절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트위터 등에서는 "마트에서 쇼핑 중인데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인터넷이 안 돼 업무를 볼 수 없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피해 구제 가능할까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에 대한 피해 구제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순환정전 조치에 따라 강제적으로 전기 공급이 끊긴 기업이나 가계가 입은 피해가 전체로 보면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불가항력 상황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없다"며 한발 빼는 모습이다. 한국전력 약관 등에 따라 '명시적으로' 한전의 실수가 아니면 법적으로 피해보상 책임이 없는 데다 이번 순환정전이 더 큰 규모의 광역 정전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전력 관리'성격이 짙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보상책을 내놓지 않으면 여론이 악화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정부와 한전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상황을 점검한 뒤 한전이나 전력거래소에서 적절한 피해 보상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사회부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