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자국 통화 강세를 막기 위한 시장개입으로 인해 아시아 통화 절상 압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업체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달러와 유로화의 약세를 피해 스위스프랑 등 안전자산에 몰렸던 글로벌 자금이 추석 연휴 이후 상대적으로 경제 체력이 좋은 아시아 신흥국가들로 이동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 같은 움직임이 현실화돼 원화 강세가 심화된다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출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이 큰 대형주 비중을 줄이고 중소형 내수주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가져가는 게 유리하다고 말한다.

◆원화 절상 압력 커져

지난 6일 스위스가 '스위스프랑화 강세의 무제한 억제' 정책을 내놓으면서 노르웨이 크로네화 등 대안 통화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스위스프랑에 몰렸던 자금이 재정건전성이 좋은 주변국으로 확산된 영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위스의 외환시장 개입을 발단으로 추석 연휴 이후 글로벌 통화질서의 기본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영원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스위스의 환율 방어는 다른 나라의 동반 개입을 자극하면서 전 세계적인 통화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과정에서 아시아 통화의 절상 압력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 최근 5%를 뛰어넘은 물가상승률과 꾸준한 무역수지 흑자로 인해 강세 압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효진 동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자금 흐름 측면에서 원화의 강세 압력은 아시아 통화 가운데서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기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경기 부양을 위한 미국의 다음 카드는 환율 정책"이라며 "저평가된 아시아 신흥국 통화 가치에 대한 절상 압력을 강화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원 · 달러 환율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엔 · 달러 환율과 비슷한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이날 기준 각각 달러당 1077원30전과 77.4엔 수준으로 최근 1년 동안 7.6%와 8.1% 하락했다.

◆수출주 대신 내수주 비중 확대

경쟁국 통화와 비교해 원화의 두드러진 강세는 국내 대표적인 수출업종인 자동차와 정보기술(IT) 화학 부문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환율이 10% 하락할 때 수송장비업종의 영업이익률은 가장 많은 3.8%포인트 줄어든다. 수출 비중이 54%(2008년 기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60%에 달하는 전기전자는 2.8%포인트,제조업 평균적으로는 0.8%포인트 이익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부담이 반영되면서 대형 수출주들의 주가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9일 운송장비업종은 2.30% 하락했다. 현대차가 1.99%,현대모비스는 2.99% 떨어졌다. LG화학은 2.40% 내렸다. 대형주지수는 2.05% 하락해 코스피지수 낙폭(1.83%)을 웃돌았다.

최대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경우 올해 전 세계 판매 예상 물량 400만대 가운데 110만대만 국내 공장에서 수출될 것으로 추산돼 과거에 비해 환율 변화로 인한 충격이 크지 않겠지만 부품업체는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를 피해갈 대안으로 내수주 비중 확대를 권하고 있다. 이경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와 IT 등 낙폭 과대로 인한 반등이 예상되는 대형주와 함께 음식료와 기계업종 등 중형 내수주를 함께 들고 가는 바벨 전략이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형주로는 좋은 실적이 예상되는 대상과 한국콜마 하이록코리아 컴투스 등을 추천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