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연일 팔자에 나서면서 코스피 지수 급락을 주도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 돌아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장기 투자 성향의 대형 외국계 투자사들이 주가 급락기에 저가 매수에 나선데 이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수 강도를 높이며 사흘째 비교적 큰 규모의 매수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1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지난달 코스피 시장에서 4조6238억원 어치를 처분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달 30일과 31일 1984억원, 268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날도 장 개시한지 1시간반만에 4000억원 이상 주식을 순매수하고 있다. 매수 강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법인 영업담당 임원은 "롱텀(장기투자 성향) 펀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롱텀 펀드들의 경우 한번 사기 시작하면 상당 기간 주식을 사들이기 때문에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에셋매니지먼트 이머징마켓그룹 회장도 최근 서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신용등급 강등 악재가 터지자 외국인들이 한국 뿐 아니라 유동성이 좋은 주식시장에서 집중적으로 자금을 회수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자금이 신흥시장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한국의 주가가 더 떨어지면 한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이머징시장은 여전히 선진시장보다 더 높은 성과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외국인은 지난 이틀 동안 코스피시장에서 현대모비스(827억원), 기아차(823억원), 삼성전자(784억원), 현대차(598억원), KB금융(344억원) 등 대형주를 많이 사들였다. 이날도 비차익 매수를 통해 대형주들을 쓸어담고 있다. 선물에 연동되지 않는 비차익 거래는 코스피200 종목 가운데 15개 이상의 종목으로 바스켓을 구성해 한 번에 매매하는 방식이다. 비차익 매수가 늘어날 경우 시장이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장기 성향의 대형 외국계 투자사들은 이미 지난달 주가 급락기에 일부 종목에 대한 지분을 확대했다.

세계 최대 운용사 피델리티 계열의 피드 이멀징 마켓 펀드(FID EMERGING MARKETS FUND)는 특별관계자와 함께 파라다이스 주식 460만5510주(5.06%)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난달 30일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대형 외국계 투자사가 파라다이스 지분 5% 취득 신고를 한 것은 2008년 12월 JF애셋매니지먼트가 5% 아래로 지분 축소를 신고한 이후 처음이다.

파라다이스는 게임 테이블 증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승호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파라다이스는 워커힐 측과 합의가 이뤄지는 대로 면적(현행 3000평)을 30~70% 늘릴 예정"이라며 이 경우 테이블을 15~35% 증설할 수 있는데 테이블을 25% 정도 늘릴 것으로 가정할 경우 목표주가는 1만1000원으로 산정된다고 밝혔다. 중국인 이용객들이 급증하는 추세인데다 워커힐도 호텔의 객실 가동률을 높일 수 있어 카지노 확대에 우호적이라고 설명이다.

세계 3대 투자그룹 가운데 하나인 미국계 대형 투자회사 캐피탈 그룹의 캐피탈 그룹 인터내셔널 인코포레이티드(CGII)도 지난달 25일 특별관계자와 함께 LG화학 주식 등을 5.08% 보유하고 있다고 금감원에 신고했다.

LG화학은 세계 경기 불확실성에도 탄탄한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우증권은 지난달 30일 LG화학에 대해 글로벌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은 높아졌으나 화학 부문에서의 견조한 실적과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고려할 때 주가 하락은 과도한 수준으로 판단된다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54만원 을 유지했다.

다른 외국계 투자사들도 주가 하락을 매수 기회로 활용했다. 네덜란드계 투자사인 델타 로이드 에셋매니지먼트(Delta Lloyd Asset Management N.V.)도 지난달 23일 웅진씽크빅 주식을 추가 매수해 이 회사 주식 131 만2900주(5.08%)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난달 30일 금감원에 신고했다. 지난 6월 대웅제약 지분을 5% 이하로 낮췄던 영국계 투자사인 에르메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Hermes Investment Management Limited)도 다시 지분을 5% 이상으로 높였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chs879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