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읽고, 점심은 고급 도시락
KT·SKT 서로 '교란 작전' 펼치기도

외부의 출입은 물론 연락도 엄격히 통제된 주파수 경매장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3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첫 주파수 경매가 진행된 지난 17일부터 평일 9일간 KT와 SK텔레콤의 담당 임직원들은 경매장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 정보통신기술협회(TTA) 건물 지하 1층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각 사의 입찰실이 떨어져 있었고, 복도 곳곳에 방송통신위원회 직원들로 구성된 행정요원들이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행정요원들은 담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KT와 SK텔레콤 대리인들이 화장실에 들르는 모습까지도 주의 깊게 지켜봤다.

각 사의 입찰실에는 임원급인 입찰 대리인 1명과 실무자 2명이 입장했는데, 이들끼리의 의사소통도 그리 자유롭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행정요원 2명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1.8㎓ 대역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갈릴 수 있는 중요한 주파수 경매였기 때문에 대리인들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특히 상대편이 입찰가를 적어내는 라운드가 여유 있었다.

하성호 SK텔레콤 상무는 틈나는 대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었다.

다른 직원들은 간식을 먹거나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컴퓨터로 회사에서 하던 엑셀 작업 등을 이어서 하고, 이동통신 관련 저널이나 책자 등을 읽기도 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처음에는 여유가 많았지만, 입찰가가 8천억원을 돌파하면서부터는 하 상무나 직원들이 뭘 해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점심때에도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이 때문에 KT와 SK텔레콤 직원들은 방통위가 제공하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자유롭지 않은 공간에 있는데 먹을 때라도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식 초밥이나 패밀리레스토랑 도시락 등 고급 음식을 시켜 먹었다"고 말했다.

KT와 SK텔레콤은 상대의 전략을 교란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입찰할 때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KT는 '빨리 쓰기', SK텔레콤은 '올려 쓰기' 작전을 펼쳤다.

각 라운드에는 30분이 주어지는데, KT는 경매 첫째 날인 17일과 8일째인 26일 총 3번의 라운드에서 각각 약 2분, 5분, 10분 만에 입찰가를 적어 제출했다.

하루에 입찰 라운드가 10번인 날도 있고 11번인 날도 있었는데, 11번의 라운드가 진행된 날이 바로 KT가 입찰가를 일찍 적어낸 날이다.

사업자들은 자신의 라운드에서 보통 직전 최고입찰가에 입찰증분(전 라운드 최고 입찰가의 1%)만큼 올린 가격을 희망 낙찰가로 적어내는데, SK텔레콤은 2번에 걸쳐 입찰증분에 '웃돈'을 얹어 상대방과 방통위 요원들을 놀라게 했다.

SK텔레콤은 둘째 날인 18일 입찰증분보다 '1억원' 많은 가격을 적었다.

26일에는 입찰증분보다 무려 '74억원' 많은 가격을 희망 낙찰가로 제출했는데, 이 가격이 바로 최종 낙찰가인 9천950억원이다.

SK텔레콤은 '1조원 돌파'의 공을 KT로 넘기려고 일부러 74억원을 추가한 것이다.

SK텔레콤은 1.8㎓ 대역에 대한 입찰 81라운드에서 시도한 마지막 작전 덕분에 경매에서 이길 수 있었다.

실제로 1조원 돌파에 부담을 느낀 KT는 82라운드 '입찰 유예'를, 83라운드에서 '입찰 포기'를 선언했고, 주파수 경매는 그대로 종료됐다.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abb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