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한창인 상황에서 장수가 바뀌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스티브 잡스가 애플 최고경영자(CEO)에서 사임한 것은 이렇게 표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동안 애플은 천하무적이었고 백전백승했다. 애플군의 장수인 스티브 잡스는 신 같은 존재로 추앙받았다. 잡스가 떠나면 애플은 어떻게 될까.

현재 애플은 구글 삼성 노키아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전선을 펼치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라는 개방형 모바일 운영체제(OS)를 내놓고 안드로이드 진영을 규합해 애플에 맞섰던 주동자다. 최근 안드로이드 진영 장수 중 하나인 모토로라를 인수하고 애플을 정면에서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디바이스 분야 최대 라이벌인 삼성과는 9개 국가에서 특허싸움을 진행 중이다.

◆경쟁사들의 거센 추격 견뎌낼까

세계 최대 휴대폰 메이커로 깃발을 날렸던 노키아와 윈도 OS로 PC 시대를 주름잡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로 손을 잡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노키아는 애플과 삼성에 밀려 3위 스마트폰 메이커로 주저앉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 패해 윈도모바일을 버리고 윈도폰7으로 추격하고 있다. 두 패장이 연합한들 별 수 있겠느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무시할 기업들은 아니다.

모바일 디바이스 측면에서 봐도 애플로서는 CEO를 교체할 시기가 아니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내놓아 스마트폰 시장을 뒤집은 뒤 지난해 아이패드로 태블릿 시장을 선점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아이패드를 이기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함성이 높고 태블릿 시장에서도 삼성 HTC 등이 칼을 갈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디바이스가 다양해지면서 클라우드(데이터,콘텐츠,소프트웨어 등을 데이터센터에 저장해놓고 어떤 디바이스로든 이용하도록 지원하는 서비스)가 새 싸움터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애플은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고 '아이클라우드'라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분명 선두주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클라우드 서비스만 놓고 보면 구글이 앞서가고 있다.

아이클라우드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각종 애플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게 된다. 문제는 아직 미완성이란 점이다. 애플은 2008년 아이클라우드 전신인 '모바일미'를 내놓았지만 실패했다. 잡스가 '취미'라고 했던 '애플TV' 역시 미완성이다.

◆애플 DNA도 변질될 가능성

물론 애플이 잡스 한 사람 떠난다고 일시에 흔들릴 리는 없다. 그럴 기업이라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아이(i)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애플에는 분명 경쟁사들을 이길 수 있는 특별한 DNA가 있다. 잡스는 이걸 "세계에서 가장 큰 신생 기업"이란 말로 표현했다. 회사가 커져도 신생 기업처럼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업문화가 강점이란 뜻이다.

그러나 애플이 모바일 시장을 장악한 최대 원동력은 잡스다. 잡스였기에 고집 센 엔지니어들을 이끌고 세계 최고의 제품을 잇달아 내놓을 수 있었다. 잡스를 10년에 한 명,100년에 한 명 나올 만한 CEO라고 하는데 그런 CEO가 물러나면 변화가 없을 수가 없다. 어느 순간에는 기업문화까지 변질될 수 있다. 잡스의 사임은 애플에는 위기이고 경쟁사들에는 기회다.

팀 쿡은 25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며 "애플의 DNA를 가꾸고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잡스가 이사회 의장으로서 영감을 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