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사업 부도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쫓기듯이 고향(전남 강진)을 떠나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던 10대 소년이 50여년 만에 중견기업을 일궈냈다.

박현남 성호전자 회장(58) 얘기다. 끼니 걱정을 하던 그는 현재 국내에서만 175명을 고용해 매출 2000억원을 목전에 둔 중견기업의 오너가 됐다. 서울 가산동 성호전자 본사에서 만난 그는 "어린 시절의 시련이 지금의 성호전자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며 "3년 후 5000억원,6년 후 1조원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호전자는 필름콘덴서 국내 1위 기업이다. 필름콘덴서는 금속전극판에 유전체를 삽입하고 양극에 전압을 넣으면 전하를 축적하는 부품으로 노트북,프린터,TV 등 모든 전자제품에 쓰인다. 필름콘덴서와 전원공급장치(파워) 두 품목으로 이 회사는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매출 1537억원,영업이익 85억원을 각각 달성했다. 연간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올해 매출목표는 1800억원이다.

이 회사는 글로벌 TV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콘덴서 수요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두 회사 TV 10대 중 7대 이상에 성호전자 콘덴서가 장착돼 있는 셈이다. 애플의 일체형 PC '아이맥'에 쓰이는 콘덴서도 50% 이상이 성호전자 부품이다. 컴퓨터를 켜면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팬과 필름의 진동으로 인해 소음이 발생하는데 성호전자 콘덴서를 장착한 컴퓨터에서만 소리가 작은 것을 발견한 애플이 협력사들에 "성호전자 콘덴서를 사용하라"고 지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회사의 라운드타입 콘덴서는 소음이 6데시빌(㏈)로 기존 제품(30㏈)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매출처도 다변화되고 있다. 삼성과 LG에 이어 올 들어 필립스의 공급 관문을 뚫었다. 제품별로는 TV에 이어 세탁기와 냉장고 등 가전 시장에 진입했다. 전원공급장치도 힘을 보탰다. 셋톱박스와 프린터에 이어 2분기부터 국내 대기업 냉장고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일본 소니 샤프 마쓰시타 TDk(세계 1위 종합부품업체)도 고객이다.

새로운 먹을거리 발굴에도 나서고 있다. 이미 태양광,전기차,의료기기,전장산업 전용 '스누버(snubber) 콘덴서' 개발을 끝마치고 시험 생산에 돌입했다. 또 건물일체형 태양광시스템에 최적화된 전력장치도 개발 중이다.

이회사는 월 1억개 수준인 생산규모를 내년 1억5000만개,2014년 3억개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박 회장은 "직원의 25% 가량이 연구개발(R&D) 인력일 정도로 R&D에 치중하고 있다"며 "2017년엔 매출 1조원을 달성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