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HP)의 태블릿PC '터치패드' 49일,마이크로소프트(MS)의 휴대폰 '킨' 48일….

최근 미국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시장에 내놨다 거둬들인 신제품들의 수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IT 기업들이 점점 할리우드 영화사들을 닮아가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개봉 첫주 흥행에 실패하면 '블록버스터'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극장에서 영화를 내리는 영화사들처럼 IT 기업들도 신제품의 성공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재빨리 제품 판매를 중단한다는 설명이다.

NYT에 따르면 MS는 2005년 게임기 'X박스360'을 출시했을 때 당시 시장을 휩쓸고 있던 닌텐도 '위'와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제품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MS는 포기하지 않았고 X박스는 가장 잘 팔리는 비디오게임 콘솔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IT업계에서 이 같은 끈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애플이다. 애플이 아이폰,아이패드 등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애플이 아닌 기업들의 제품은 시장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조사회사 IDC의 알 힐와는 이 같은 고가 IT제품의 수명 단축을 '진화론의 결과'라고 표현했다.

IT제품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들이 제품 출시 직후 트위터나 블로그에 올리는 사용후기도 제품 수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화 개봉 직후와 마찬가지로 출시 초기 제품에 대한 혹평이 쏟아지면 이를 만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제품 판매를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품 수명 단축은 고객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품 출시 첫날 HP의 터치패드를 구매했던 니얼 로커토는 "애플리케이션이 추가로 개발되지 않아 환불을 받았다"며 "HP가 거짓말을 한 것 같은 생각에 더 이상 HP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