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가계대출 잔액은 2분기 중 17조8000억원 늘어 6월 말 현재 826조원을 기록했다. 외상구매(판매신용)까지 합치면 876조원에 이른다. 월 6조원씩 늘어난 셈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가계대출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던 6월 이후에도 증가속도는 여전하다. 은행을 조이니 대출수요가 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도 뚜렷하다. 가계대출을 막아도 문제,내버려둬도 걱정인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 정부가 변죽만 울려온 데 있다고 본다. 6월 말 가계대출 대책 발표 전 "시장이 좀 지나치다 할 정도의 대책을 내놓겠다"던 금융위원장이 나중엔 "시장을 놀라게 해선 안 된다"고 말을 바꿨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통계착시 운운하고,한국은행 총재는 별 문제 없다고 딴 목소리를 내며 시간만 허송했다. 최근 일부 은행들의 가계대출 중단 해프닝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명목GDP 증가율 수준(연간 7%대)에서 관리하라고 요구하자 은행들은 기계적으로 12개월로 나눠 월간 증가율을 0.6%로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시행하려던 추가 가계대출 억제책을 앞당기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정부의 가계대출 처방은 한마디로 '샤워실의 바보'가 아닐 수 없다. 뜨겁다고 찬물을 틀고,차다고 뜨거운 물 트는 동안 가계부채는 통제불능 수위로 치닫고 있다. 증시가 폭락하고 부동산은 얼어붙었는데도 가계대출이 폭증하는 것은 폭탄을 키우는 꼴이다. 최근에는 주식투자를 위한 마이너스통장 대출까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위기가 기회라고 해도 빚내서 주식투자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가계대출 연착륙을 위해선 통화당국의 금리인상,유동성 축소와 같은 거시적인 정공법과 금융당국의 미시대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하지만 통화당국은 금리 조절에 실기(失機)한 데다 글로벌 위기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금융당국은 어설픈 창구지도로 틀어막으려다 혼란만 키웠다. 화폐의 타락으로 돈값은 싸지고,보금자리주택처럼 로또를 만드는 정책이 여전한 상황에서 가계대출 연착륙은 요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