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의 희생만을 강요하던 80대 할아버지가 결국 부인에게 위자료와 재산분할 등으로 거액을 물어준 뒤 이혼당했다는 얘기가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최근 노후에 부부가 헤어지는 황혼이혼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이혼 건수는 2000년 1744건에서 2009년 말 6109건으로 불과 9년 만에 250% 이상 증가했다.

황혼이혼까지 이르게 되는 부부 간 갈등은 일반적으로 남편의 은퇴 이후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다. 수십년간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오던 남편이 은퇴 이후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회사 직원에게 하듯 아내에게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면 부부 간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내는 남편이 회사에 매달려 있는 동안 주변 여러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오랫동안 '사회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서로 간에 생각 차이가 큰 것이 당연하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은퇴를 준비하면서 재무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가족모임,사회활동,취미 · 여가생활,건강관리 등으로 균형 있고 종합적인 '행복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은퇴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는 어느 한 가지로만 풀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경우가 많다. 부부 간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적절한 사회활동과 여가생활,건강 등이 모두 맞물려야 원만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둘째 남편과 함께 아내도 집안 일로부터 은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지냈던 한 은퇴자는 아내가 언제부터인가 자주 화를 내며 부부 간 갈등이 깊어졌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그는 어느날 친구의 조언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다. 자신은 은퇴해서 비교적 여유롭게 생활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집안 일 등에 치여 여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고민 끝에 1주일에 한두 번 이상은 외식을 하기로 해서 아내가 그 시간만은 식사준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또 가끔씩이라도 설거지나 청소 같은 집안일을 나눠서 하니 부부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졌다고 한다.

셋째 아내의 삶을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자.일반적으로 은퇴 이후에 부부는 '활동기-회고기-남편 간병기-부인 홀로 생활기-부인 간병기'의 단계를 밟는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기대수명이 7년 정도 더 긴데다 2~3살 차이로 결혼하기 때문에 남편보다 아내가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남편들은 아내의 간병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부인은 아픈 남편을 간호하다가 남편이 떠나면 혼자서 10년 이상 살아가게 된다. 아내 홀로 살아가게 될 노후에 대해 아내의 시각에서 은퇴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부부 사이에 잔소리보다는 자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부부나 가족 간 대화를 늘리려고 하는데 평생 안 하다가 은퇴하고 나서야 대화하려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은퇴 전부터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