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경제대공황기의 음습한 분위기가 돌아왔다. "(로이터통신)

'검은 월요일',글로벌 증시가 동반 폭락하자 1930년대 말 대공황기의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 부양책으로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했지만 1937년 긴축으로 돌아섰다가 다시 장기 침체로 빠져들었던 때와 최근의 모습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 형편이 어려워진 미국이 성급하게 긴축에 들어갔다가 자칫 사태를 악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인 것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대공황의 그늘이 전 세계를 덮고 있다"며 "잘못된 처방을 내릴 경우 대공황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책 실패가 '더블딥' 촉발

파이낸셜타임스는 8일(현지시간)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에 떠는 것은 미국이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경제가 장기적으로는 경기 부양을 해야 할 처지지만 단기적으로는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긴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3차 양적완화'나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긴축정책' 모두 사태를 해결하기보다 '더블딥'을 촉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1937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는 뉴딜계획 등을 통해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자 재정적자를 축소하는 긴축정책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이 조치 후 산업생산이 곤두박질치고 주가는 다시 급락했다. 그리고 불황은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2011년 키를 쥐고 있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한 강연에서 "성급한 긴축으로 경제가 위축됐던 1937년의 사례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긴축은 세계시장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도 버냉키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돈을 풀면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고,긴축을 하면 전 세계 경제위기에 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미국이 1920년대 증권 투기 억제 등을 목표로 긴축정책을 고수하자 독일 아르헨티나 호주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을 겪었다.

◆패권교체기 리더십 상실

글로벌 리더십의 실종도 1930년대 경제대공황 때와 유사하다. 찰스 킨들버거 전 MIT 교수는 "경제대공황기에 쇠퇴한 영국은 세계 경제를 안정시킬 능력을 상실했고 미국은 그때까지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의사가 없었다"며 "패권교체기 리더십 공백으로 국제경제 시스템이 불안정해졌다"고 분석했다. 1920년대까지 크고작은 경제 위기는 영국이 지도력을 발휘해 수습했다. 그러나 영국이 리더십을 상실한 1930년대에는 증시 폭락 같은 심리적 공포가 그 공백을 타고 거침없이 확산됐다.

최근 패권국가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라고 역설했지만 시장은 오바마의 발언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여전히 "다친 건 미국인데 왜 아픈 건 중국인가"라는 태도를 보이며 책임을 떠맡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美 대선 변수가 문제 키워

경제대공황이 극에 달했던 1932년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당시 공화 · 민주 양당 대통령 후보였던 허버트 후버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 문제를 다룰 국제 공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금본위제 복귀 및 국제 공조 강화를 다룰 런던 세계경제회의는 미국 대선 후인 1933년으로 미뤄졌다. 1933년 6월 세계경제회의가 열렸지만 미국의 공식 입장은 "국내 경제를 회복하는 데 집중할 것이며 국제 문제는 간섭하고 싶지 않다"는 '고립주의' 노선이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지역별로 이합집산하며 경제위기는 장기화됐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민주 · 공화 양당의 정쟁은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빌미를 제공했다. 나이젤 골드 IH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쟁이 대공황 때와 유사하다는 것을 투자자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장성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