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대문로의 한국은행 본점 지하 1층에는 대형 금고가 있다. 이곳에는 시중에 풀리지 않은 돈(원화)이 보관돼 있을 뿐 금은 1g도 없다.

한은이 보유한 금 39.4t은 어디에 있을까. 영국 중앙은행이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하 창고에 영국 소유의 금뿐 아니라 외국 중앙은행이 맡긴 금을 금괴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 금괴는 보통 400트로이온스(1트로이온스=31.1g) 크기로 만들어진다. 한은 소유의 금 39.4t을 이 금괴로 환산하면 3167개 정도다.

한은이 처음부터 영국 중앙은행에 금을 맡긴 것은 아니다. 1950년 설립된 한은은 소량의 금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6 · 25전쟁이 터지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 잠시 금을 옮기기도 했지만 종전 후에는 돌려받아 보관했다.

한은이 영국 중앙은행에 금을 맡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당시 보유 중인 금 일부를 예치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금 모으기 운동' 때 매입한 금 3.04t도 곧바로 영국 중앙은행으로 보냈다. 이후 소량의 금을 보관하던 한은은 2004년 이후 보유 중인 모든 금을 영국 중앙은행으로 옮겼고,이후 금을 전혀 보관하지 않고 있다.

한은이 영국 중앙은행에 금을 예치한 것은 금을 활용한 국제 금융거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런던 금 시장은 국제적으로 금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다. 금을 활용한 대표적인 금융거래는 금 대여거래와 스와프거래다. 금 대여거래는 필요한 곳에 금을 빌려주고 이자로 금을 받는 거래다. 금 스와프거래는 금을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빌리는 거래를 말한다.

한은은 198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금 대여거래에서 상당한 재미를 봤다. 이 기간 금 대여거래를 통해 받은 이자는 1.5t으로 지난 6월 말 기준 금 보유량 14.4t의 10%가량에 달한다.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배당수익이나 이자수익을 얻을 수 없는 금의 약점을 금 대여거래로 보완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금리가 낮아져 금 대여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 금 대여거래 이자는 2008년 금융위기 전에는 연 0.1~0.5% 정도였지만 현재는 제로(0)수준이란 게 한은의 설명이다.

영국 중앙은행에 금을 맡기는 데는 보관 수수료가 든다. 하지만 수수료는 미미한 수준이다. 한은 관계자는 "영국 중앙은행의 금 보관 수수료는 400트로이온스짜리 금괴 한 개당 하루 0.035파운드(600원) 정도"라며 "한은이 현재 보유한 39.4t의 보관 수수료를 다 합쳐도 연간 1억원이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