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래미안 상가 5층에 있는 산업은행 반포지점은 지난 1월 문을 연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1500억원이 넘는 개인고객 예금을 유치했다. 단지 내에만 5개 시중은행 지점들이 부유층 고객을 잡기 위해 각축하는 상황에서 거둔 실적이다. 이 지점은 현재 1년 정기예금 금리로 최고 연 4.4%,3개월짜리는 연 4.0%의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고객을 끌어 들이고 있다.

시중은행들에는 산은 경계령이 떨어졌다. 산은이 수신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잇따라 주요 지역에 지점을 내면서 경쟁은행 지점보다 최대 0.5%포인트 안팎의 높은 금리를 주고 있어서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기업에 대출하는 데 안주했던 '만년 갑(甲)' 산은 직원들도 크게 달라졌다. 팸플릿을 들고 강남의 백화점을 돌며 고객을 만나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에 전단지를 뿌리기도 한다. 국책은행 산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달라진 산은…고금리로 공략

산은은 지점 수 57개에 총수신액 3조5000억원으로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점포 수 1151개,총수신 201조6534억원)의 비교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리에선 다른 은행들을 압도하고 있다. '국책은행'이라는 신뢰감에 실리까지 더해지면서 타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산은으로 예금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산은 지점들은 현재 정기예금 금리(지점장 전결금리 포함)로 △1년 연 4.4% △6개월 연 3.9% △3개월 연 4.0%를 주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1년 정기예금에 가입하거나,스마트폰 혹은 인터넷으로 산업금융채권을 사면 금리는 연 4.65~4.70%로 높아진다. 1년 정기예금 금리로 따지면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낮은 외환은행(3.8%)보다 0.8%포인트나 높다.

◆하반기 20개 지점 신설

산은의 변화는 강만수 회장이 나서 주도하고 있다. '머나먼 길'이지만 민영화를 위해서는 수신 기반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4월엔 영업을 시작한 서울 선릉점 개점식에 강 회장이 직접 참석해 직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산은은 상반기에만 반포점 선릉점 이촌점 해운대점(부산) 등 4개 개인금융 지점을 열었고 가산점 성동점 용인점 녹산점(부산)에도 개인금융과 기업금융을 동시에 취급하는 점포를 냈다. 하반기에도 신문로점 광화문점 역삼점 등 수도권에 20개 지점을 새로 개설할 예정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작년 말 2조2000억원이던 총수신을 올해 3조5000억원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는 상반기에 이미 달성했다"며 "점포가 늘고 인지도가 더 높아지면 4조5000억원까지 수신을 늘리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 바짝 긴장

산은의 영업 행태에 대해 시중은행들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금리를 높여 맞대응에 나서자니 역마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 강남의 A은행 지점장은 "규모가 큰 공기업들이 수신 금융기관 선정 절차를 밟고 있는데 산은이 3개월짜리 예금금리를 연 3.97%로 제시했다"며 "시중은행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금리를 지급하며 수십년 거래처들을 흡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PB(프라이빗뱅킹)센터 지점장은 "산은이 높은 금리를 주는 예금과 산금채로 강남권 PB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울며 겨자먹기로 일부 역마진도 감수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류시훈/조재길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