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던 길 멈춰 서서 >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근심에 가득 차,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7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영국 시인의 작품입니다.
그는 일에 쫓겨 허덕거릴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고 말합니다.
근심에 잠긴 사람에게는 눈앞의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지요. 희망의 눈이 감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다람쥐가 풀숲에/개암나무를 감추는 것'이나 '별들 반짝이는 강물'까지라면 더욱 좋지요.
그 여유가 아름다운 여인의 눈과 발,춤추는 맵시,입술에 번지는 미소를 발견하게 해주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해줍니다.
뾰족한 직선의 세상을 둥글게 보듬어 안는 곡선의 미학. 그 오묘한 힘도 잠시 길을 멈추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서 나옵니다.
고두현 문화부장 ·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