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순간이고,순간은 삶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그 안에 있지요. 몸짓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보여줄 수도 있고요. "

현대무용의 나침반이라 불리는 천재 안무가 이리 킬리안(64 · 사진)의 대답은 명쾌했다. 28세에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돼 하락기에 있던 무용단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1973년부터 지금까지 101개의 작품을 안무해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공연해온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그의 작품 중 '프티 모르'와 '세츠 탄츠'는 오는 9~12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모차르트의 가장 위대한 점은 한번도 심각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마치 뭔가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을 기다리는 최종 리허설 같은 인생을 살았어요. 그가 처음으로 대작 '돈 지오바니'를 만든 곳이 체코 프라하,곧 제가 나고 자란 곳이죠.그 도시에서 음악과 춤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순간도 그의 체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죠."

킬리안이 한국 관객에게 소개할 그의 고전 두 작품 중 '프티 모르(어떤 죽음)'는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해 안무한 것으로 모차르트 음악 중 가장 아름답고 대중적인 피아노 협주곡의 느린 두 부분을 썼다.

'세츠 탄츠(여섯 가지의 춤)'는 1986년 초연된 작품으로 희극적이고 익살스러운 안무가 특징.200여년 전 모차르트가 작곡한 6개의 독일무곡을 사용해 작곡 당시의 수많은 전쟁과 혁명,사회 변화 등 역사적인 순간을 나타내고자 했다.

킬리안은 "'세츠 탄츠'는 유머러스한 작업이었는데,유머가 때로는 잔인할 수도 있다"며 "요즘 사람들은 웃을 일이 별로 없거나 웃겨도 웃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9세부터 무용을 시작해 1956년 프라하 국립극장 부설 발레스쿨과 프라하 콘서바토리를 거쳐 1967년 런던 로열발레스쿨을 졸업한 그는 연극적 발레의 전성기를 이끈 안무가 존 크랑코의 눈에 띄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때부터 무용수로 활약하는 동시에 안무가로서의 뿌리를 다졌다.

"존 크랑코는 저의 친구이자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죠.그가 아니었으면 전 그저 무용수로 남았을 테니까요. 그는 제게 안무가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감각을 키워줬어요. 그는 안무할 때마다 무용수들과 늘 인간적인 방식으로 대화하고 생각을 나눴죠.모든 무용수가 그의 안무에 참여할 수 있었고,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창작의 원천이 됐던 점에서 그를 존경해요. "

그는 자신이 천재 안무가라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와 곡예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는 자연스럽게 서커스를 보며 자랐어요. 어느 날 발레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죠.저는 스스로 뛰어난 무용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단지 아주 어린 나이에 춤이란 녀석과 사랑에 빠졌던 것뿐이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