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화살을 꽂고 활을 눈높이로 들어올린다. 활을 잡은 줌손을 천천히 앞으로 밀면서 등힘으로 오른팔을 잡아당긴다. 활의 장력이 두 손 끝에서 팔과 어깨를 통해 온몸에 전달된다. 과녁을 향한 화살촉을 응시하며 깍지(시위를 거는 엄지손가락에 끼는 기구)를 푸는 순간 화살은 '피융' 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가른다. 곧이어 '텅'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관중(貫中 · 과녁에 명중)이다.

한민족 반만년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심신단련 수단으로 사랑받아 온 국궁(國弓)을 체험하기 위해 지난 2일 '국궁의 종가(宗家)' 황학정(黃鶴亭)을 찾았다.

◆국궁의 종가 황학정

인왕산 자락 사직공원 위쪽에 자리한 황학정 주변 풍경이 싱그럽다. 도심의 빌딩 숲과는 달리 녹음이 짙다. 꾀꼬리 울음소리도 들린다. 사대엔 활시위를 당기는 회원들이 여럿이다.

황학정 입구엔 창립 111주년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황학정 35대 사두(射頭) 신동술 씨는 "황학정은 구한말에도 유일하게 조선 궁술의 명맥을 이었던 곳"이라며 "전국 380여개 활터의 종가"라고 소개했다.

조총 등 신식무기가 도입되고 전국의 활터가 사라지자 고종은 어명을 내려 1898년 경희궁 내에 사정(射亭)을 세운다. 경희궁이 헐리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황학정이 국궁의 명맥을 이어가면서 전국에 활쏘기를 배우고 수련할 수 있는 사정이 꾸준히 세워졌다. 현재 3만여명의 동호인들이 국궁을 즐기고 있다.

◆정신집중이 핵심

국궁의 생명은 정신집중과 올바른 자세다. 전수관 벽에 걸린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을 읽으며 활쏘는 요령을 머릿속에 담는다. 왼발은 정면을 향하고 오른발은 45도 각도로 만들어 서며 가슴은 비우고 배에 힘을 준다. 줌손은 태산을 미는 듯 앞으로 밀고 오른손은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당기듯 뒤로 당긴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화살은 과녁을 빗나간다. 신 사두는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양팔을 잡아당겨야 한다"며 "오른팔은 물컵을 올려놔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땅과 수평을 이뤄 시위를 당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세뿐만이 아니다. 잡념을 없애고 활과 화살에 집중해야 145m 앞에 놓인 과녁을 맞힐 수 있다.

정식으로 활을 쏘는 사대에 오르려면 3개월간의 교육을 마쳐야 한다. 체험을 위해 회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사대에 올라섰다. 배운 대로 한다고는 했는데 시위를 잡아당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줌손은 활의 탄성을 버티느라 부들부들 떨린다. 과녁은 가로 2m 세로 2.66m로 큰 편이지만 145m나 떨어져 있어서인지 작게만 느껴진다.

◆초보자 장비 구매가격 40만원

집 근처 사정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에 등록하면 국궁을 배울 수 있다. 전국에 380여개 사정이 있다. 황학정에선 3개월 정규코스가 있다. 강습료는 20만원.

강습기간에는 장비를 사지 않고 수련관에 비치된 활과 화살 등을 이용하면 된다. 3개월 과정을 수료하고 난 뒤 자신의 활을 구입한다. 탄소섬유 소재의 보급형 활은 20만원 정도이며 화살은 개당 8000원 수준이다. 초보자가 모든 장비를 갖추려면 40만원 정도 든다. 중급자 이상이 되면 무소뿔 대나무 참나무 산뽕나무 쇠심줄 등으로 만든 전통활을 갖춘다. 55만~60만원이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화살은 개당 2만5000원이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