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은행 퇴직연금에 들었는데 다른 은행 정기예금으로 운용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은행업계 고위 관계자)

정부가 은행으로 하여금 퇴직연금을 자사 예 · 적금 상품에 운용하지 못하도록 퇴직연금 운용 제도를 바꾸려고 하자 은행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은행업계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도 변경은 소비자 선택권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문제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구상 뭔가

1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금융위원회의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정 및 제도 개선 방안' 문건에 따르면 이르면 하반기부터 은행과 증권사는 자사 금융상품을 통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것이 금지된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에 가서 퇴직연금을 가입하면 국민은행은 연금자산을 국민은행 정기예금이 아닌 다른 은행의 정기예금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퇴직연금을 받은 증권사는 자사의 원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없다.

이와 함께 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입자에게 여수신 금리를 우대해주고 수수료를 면제해주거나 우대 환율을 적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건강검진 서비스 제공,콘도 이용권,상품권 제공 등도 할 수 없다다. 퇴직연금 가입을 미끼로 한 끼워팔기(꺾기)도 불가능하다.

금융위는 먼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후 감독규정까지 개정하는 것을 감안해 늦어도 연말쯤엔 이 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이 6월 국회를 통과하면 그에 맞춰 새로운 퇴직연금 감독규정도 하반기엔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퇴직연금 유치를 위한 금융회사 간 경쟁이 과열되고 있어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은행 반발 이유는

은행업계 관계자는 "이처럼 제도 변경을 추진하는 데는 정부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 점유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증권업계 비중이 낮은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증권사도 자사의 ELS 운용을 금지한다고 하지만 증권사의 ELS는 미미하기 때문에 영향이 별로 없다"며 "제도 변경의 타깃은 은행 정기예금"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우선 소비자 선택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거래 은행을 정하는 것은 그 은행의 신뢰도와 정기예금 금리 등을 보고 하는 것인데 이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이 같은 규제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업계는 또 각종 우대 혜택을 폐지하는 것도 은행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A은행 퇴직연금에 가입할 경우 A은행에 급여이체를 한 고객은 수수료 면제,환전 우대,여신금리 우대 등의 혜택이 사라진다. 인터넷뱅킹,송금,현금자동입출금기(ATM) 현금 인출,타행 이체 등의 수수료는 건당 1000~2000원 정도다.

이와 관련,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이 그간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퇴직연금 시장에서 불공정 경쟁을 펼친 측면이 있다"며 "퇴직연금 시장의 건전한 성장과 업권 간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