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 이우환과 한지조각가 정광영,추상화가 정상화,한국화 작가 박대성,'예술 전사' 이불,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 이용백,설치작가 양혜규….

올해 국제 미술시장이 회복세를 타면서 해외에서 전시회를 여는 작가가 부쩍 늘었다. 그동안 비디오 아트를 비롯한 설치미술과 미니멀리즘,구상 회화,사진 영상 등의 영역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이들이 국제무대에 한국 미술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해외 진출은 새로운 '아트 한류'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대된다. 정부가 글로벌 시장에서 코리아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줄잇는 '미술 한류'

국내 작가들은 활동 반경을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쪽으로 발빠르게 옮기고 있다. 한국 미술의 국제화와 작가 브랜드 제고를 위해 신시장을 개척하려는 판단에서다. 작가들에게 해외 진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 추상 미술의 1세대 작가인 정상화 씨(79)는 현재 프랑스 남부 생테티앵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에서 활동한 정씨는 그동안 한국적 정신성에 기반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국내외 화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정씨는 캔버스에 고령토를 3~4㎜ 정도로 도톰하게 발라 말린 후 7~8번 아크릴 물감을 덧칠하며 '뜯어내기'와 '메우기'를 반복하는 작업을 40여년째 고수하고 있다. 8월2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아크릴 물감을 여러 겹 채우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 크고 작은 네모꼴 모자이크로 가득한 단색조의 미니멀한 회화 40여점을 걸었다. 캔버스의 표면을 들어내고 메우는 그의 작품은 마치 현대인의 반복적인 일상의 숨결처럼 다가온다. 로랑 헤기 생테티앵 미술관 관장은 "정씨 작품은 잠깐 유행하는 현대미술이 아니다"며 "무수한 반복과 기다림의 연속을 통한 작업 방식에 의해 탄생한 시간성과 우주적인 공간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고 평했다.

내달 1일부터 갤러리 현대 강남점에서 개인전을 여는 전광영 씨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26~29일 홍콩아트페어에서 '퍼블릭 스페이스' 작가로 선정된 그는 대형 구(球)작품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내달에는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버지니아주 린치버그대 도라미술관에서도 전시한다. 내년에는 중국 베이징의 금일미술관을 비롯해 스페인과 독일 등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한국 작가로 국제성을 인정받아온 이우환 씨는 일찌감치 일본 화단을 발판으로 미국과 유럽을 파고들고 있다. 이씨는 내달 24일부터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시작한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여름 기획전 카드로 이씨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제 화단에 몰고올 '이우환 열기'가 벌써 기대된다. 이곳에서 한국 작가가 개인전을 여는 것은 2000년 미디어 아티스트 고 백남준 이후 처음이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 · 북미로

'무한의 제시'를 주제로 한 이 전시회는 미국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미술관 원형 홀에서 시작해 6층에 이르는 램프(나선형의 전시공간) 전체와 부속 갤러리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특정 장소에 돌을 쌓아 놓은 신작을 비롯해 1960년대 회화와 조각,드로잉,설치 작품을 망라한 90여점이 소개된다.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추상화가 이두식 씨(64)가 지난 11~20일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데 이어 한국화가 박대성 씨(66)도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 27일부터 내달 7일까지 베이징 중국미술관(中國美術館)에서 개인전을 펼치고 있는 것.박씨는 그동안 동양사상을 그림으로 구현묵(墨)을 통해 인류의 근원을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산봉우리를 병풍처럼 둘러쳐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삼각형의 사람 형상을 그린 '천지인(天地人)' 시리즈 등 80여점을 걸었다.

'예술전사' 이불 씨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 보고싱앙재단의 초대전(5월)과 영국 런던 헤이워드미술관의 개인전(6월)을 잇달아 가졌다. 이씨는 내년 2월4일부터 5월7일까지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준비 중이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이기붕 씨는 뉴욕 티나킴갤러리에서 작품전을 열고 있다. 서울과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양혜규 씨는 내달 영국 모던 아트 옥스퍼드의 개인전과 7월 브리스톨에 소재한 아놀피니펠릭스미술관에서 곤살레스 토레스와 2인전을 연다. 또 이용백 씨는 내달 1일부터 시작하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과 철 조각으로 표현한 '피에타',미디어 설치 작품 '거울' 등 대표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정부 지원도 뒤따라야

국내 작가들의 해외 진출은 결코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해외 사업을 진행 중인 작가들은 하나같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 공산품이 아닌 문화 상품인 만큼 세계인의 정서와 관행 등을 잘 알고 이를 작품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베이징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마친 이두식 씨는 "수년에 걸친 전시 공간 확보,국제적인 큐레이팅,판매 사업 수행에 이르기까지 만만한 과정이 하나도 없다"며 "그러나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린다는 의미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글로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계의 체질 개선,국제적인 인식 제고,글로벌 정보 확보 등 다방면에서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