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유럽 재정위기가 부각되면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다. 특히 26일 발표된 1분기 경제성장률 추정치가 1.8%로 지난달 발표된 잠정치와 같지만 블룸버그통신의 예상치(2.2%)보다는 낮아 경기둔화 우려를 키웠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세계 경제에 안개가 끼면서 세계 주요국 증시가 흔들리고 미 국채 등 안전자산에 자금이 유입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월가의 간판 이코노미스트인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GSAM) 회장(53)은 그러나 미국 경제의 성장둔화는 일시적인 현상이며,하반기에 다시 탄력적인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주식시장과 달러가치가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세계 경제회복의 최대 걸림돌로 유럽 재정위기를 꼽았다. 유럽연합(EU)의 리더십 부재로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한국 경제는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외부 환경에 적극 대처해 온 만큼 지속 성장할 것으로 낙관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머물고 있는 오닐 회장으로부터 전화로 세계 경제 현주소를 들어봤다.

▼미국 경제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반기 미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요즘 지표가 악화되긴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미국 경제는 하반기에 활력을 되찾고 (미국)주가와 달러는 동시에 강세를 보일 전망입니다.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주 동안 (주간)최초 실업수당 청구 건수를 챙겨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경기침체 이후 회복강도가 예전에 비해 약하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를 두고 '뉴 노멀(새로운 경제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뉴 노멀'에 대해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빌 그로스와 모하메드 엘 에리언 핌코 최고경영자가 (경제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결과라고 봅니다. 뉴 노멀은 미국인들의 소비가 예전처럼 강하게 회복되지 못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들이 소비자들의 역할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투자와 수출이 살아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미국 경제 전망은 고무적입니다. "

▼미국에서 디레버리지(부채 감소)과정이 좀 더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부채를 줄여야 합니까.

"미국 소비자들은 빚을 더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부채 감축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저축률에 따라 좌우될 것입니다. (빚이 적정 수준으로 낮아져)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저축률이 국내총생산(GDP)의 8~9%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저축률은 6% 수준이죠.3분의 2정도의 조정 과정을 거친 만큼 소비자들의 부채 감축은 당분간 더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글로벌 경제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유럽 재정위기입니다. 지도력과 지배구조 측면의 위기를 맞고 있는 EU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럽 일부국가의 재정위기를 보면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없는 (위기)전염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간단치 않습니다. 유럽 재정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역할이 없으면 유로존 내 빈부 국가 간 취약한 유대가 더욱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독일 지도자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독일이 그렇게 하길 꺼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

▼2001년 BRICs라는 용어를 만든 데 이어 최근에는 '성장 시장(growth market)'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용어를 제시했는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한국을 포함한 11개국(next 11)이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규모가 커진 만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강해졌습니다. 이들 국가를 기존의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 간주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사회적으로 부적절하고 비즈니스 측면으로 봐도 시의적절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신흥시장이라는 개념에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습니다. "

▼'성장 시장'으로서의 한국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국은 세계 변화에 잘 대응해왔습니다. 성장환경지수(growth environment score)로 따지면 한국은 캐나다를 제외한 '주요 7개국(G7)'보다 높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은 훨씬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적응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입니다. "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삼성,LG,현대자동차 등이 앞으로도 계속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보여준 유연성을 지켜갈 수 있다면 충분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

▼한국 주식시장이 유망하다는 뜻입니까.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 가격과 가치평가 등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대체로 한국을 포함한 성장 시장 국가로 글로벌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1989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폐쇄적인데다 역사적 전통을 강조하는 사회로 느껴졌습니다. 일본보다 더 보수적이었습니다. 20년 이상 지나 작년 11월 한국을 찾았을 때 중국의 부상에 적절히 대응하는 유연성과 적응력에 놀랐습니다. 영어를 활용하는 국제 비즈니스 감각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이 보여준 유연성은 (경제 성장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 첨단 기술을 채택했습니다. 인터넷 보급률도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한국이 계속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무엇입니까.

"중국 경제가 잘못되면 한국 경제도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또 원화가치의 급격한 상승도 한국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

▼중국 성장이 둔화될 것이란 우려도 세계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중국 경제 성장세가 주춤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단기적으로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아시아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부동산 시장 거품 우려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고 있습니다. "

▼상품 시장은 당분간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중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상품 가격은 더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경기 순환측면에서 세계 경제 성장세가 느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가 강화되면서 월가 금융회사들이 목표했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가 답할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자산운용회사로 자리를 옮긴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GSAM의 역할이 예전보다 더 커질 것입니다. "

▼GSAM의 한국 사업은 어떻습니까.

"한국 사업에 기대가 큽니다. 작년 11월 한국에 들렀을 때 현황을 듣고 잘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펀드 판매 금융회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긍정적입니다. "(GSAM한국법인이 2008년 선보인 코리아 주식형펀드는 지난해 41.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는 다양한 형태의 펀드를 출시하는 등 개인투자자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

▼이코노미스트로서 통찰력을 가지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합니까.

"열린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협소한 시각과 전통적인 경제 이론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고 (사회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회과학이란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

▼본받고 싶을 정도로 감화를 받은 이코노미스트가 있습니까.

"루디 돈부시 MIT 교수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환율 이론 전문가인 돈부시 교수는 2002년 타계했다).반짝반짝 빛나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무척 겸손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유망하다고 봅니까.

"가장 중요한 영역은 BRICs 등의 소비자와 관련있는 비즈니스 분야라고 확신합니다. "



◆ 오닐 회장은…'BRICs' '성장시장' 용어 만들어 · 맨유 이사로 활동한 열혈 축구팬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영국 셰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82년 영국 서레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스위스뱅크 등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파트너로 골드만삭스에 합류한 것은 1995년.그때부터 글로벌경제조사 공동 헤드와 수석 통화 이코노미스트로서 월가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2010년 9월 골드만삭스자산운용(GSAM) 회장을 맡기 전까지 글로벌 경제 · 상품 및 전략연구를 총괄했다. 세계 각국을 직접 방문, 생생한 현지 경제 현황을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자산 배분 전략을 제시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이 과정에서 2001년 'BRICs'라는 말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이머징 신흥 시장과 대별되는 개념의 '성장 시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주목받았다. 한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비상임 이사로 활동했을 정도로 열렬한 축구팬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