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의 경제위기 속에서 믿을 것은 지식재산밖에 없다. '최근 삼성전자-애플사의 '스마트폰' 특허침해 소송 등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기업 간 마찰이 눈에 띄게 늘면서 지식재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과 연관된 특허 소송은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 올 1분기까지 611건이나 된다. 국내 기업들이 국제 특허분쟁의 타깃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들에 비해 늦었지만 정부가 지난 19일 지식재산기본법을 공포하면서 비로소 지재권 보호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첫단추를 뀄다.

한국경제신문은 기업들이 지식재산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지상좌담회를 열었다. 남궁 덕 한국경제신문 중기과학부장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엔 이상희 대한변리사회장(전 과학기술처 장관),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윤종용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장,이수원 특허청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지식재산권을 둘러싼 현재의 환경을 어떻게 판단하나.

▼윤종용 회장=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한마디로 토지 · 자본 등 유형자산이 경쟁력의 원천인 산업사회에서 기술력 ·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 중심의 지식기반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특허 · 브랜드 · 디자인 · 저작권 등 지식재산을 축적하면서 독창적인 사업영역을 계속 확장해 부를 창출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타사의 시장진입을 봉쇄하거나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도 늘면서 기업 간 지재권 분쟁도 무척 많아졌다.

▼이상희 회장='정보화 시대' 이후 '지식재산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거다. 지식재산은 장부상의 자산이 아니라 최근 통상 규제의 주요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 기업에 대해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지재권 침해물품의 통관 금지를 요청하고 있다.

▼사회=국내 기업들은 지재권과 관련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윤 회장=삼성전자가 1년에 지급하는 특허 비용만 4조원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17조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특허 관리자를 따로 두고 특허전략 수립,리스크 조사 등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는데도 출원 후 관리가 쉽지 않다. 그러니 웬만한 중소기업들은 신경쓸 여력이 없는 거다. 인력도 없고 특허를 출원해도 유지 비용이 비싸고 법이 복잡하니까 특허를 빼앗기거나 포기하게 된다.

▼이기준 전 부총리=한국은 연구 · 개발(R&D) 투자 규모가 세계 7위(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5위),특허 출원은 세계 4위다. 외형상으로는 지식재산 강국이다. 그런데 소위 '돈 되는' 지식재산은 부족하니까 기술무역 규모는 커지는데 적자폭도 같이 늘어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생기고 있다. 고부가가치 원천특허의 부족으로 기술무역수지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적자 규모가 49억달러나 된다.

▼사회=선진국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이수원 청장=주요 국가들은 일찌감치 지식재산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범국가적 지식재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3년 세계 최초로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하고 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지식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해 지식재산 정책을 드라이브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지식재산우선화법(PRO-IP)'을 제정하고,대통령실에 '지식재산집행조정관'을 임명해 지식재산정책을 국가 전략으로 전면에 내세운 상황이다. 중국은 2009년 지식재산을 국가 3대 전략으로 공표했다.

▼이 회장=선진국들이 법과 제도를 정비한 뒤 해당 국가 기업들의 특허 출원도 크게 늘었다. 미국에서는 지재권 라이선싱이나 중개 · 평가 · 금융을 다루는 전문 업체들이 수백개씩 생기면서 지식재산 시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비즈니스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다.

▼사회=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국회 본회의에서 지식재산기본법이 통과됐다.

▼이 청장=2009년 7월에 정부 13개 부처가 '지식재산강국 실현전략'을 공동으로 마련해 대통령께 보고했는데,21개월 만에 어렵게 결실을 봤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지식재산을 국가적인 아젠다로 설정해 강력한 정책을 펴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7월20일부터 시행되는데 그 전에 범정부 기구인 국가지식재산위원회와 사무기구를 만들게 된다. 또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 수립 등 굵직한 후속 조치들이 뒤따를 예정이다.

▼윤 회장=강한 지식재산권을 창출해야 한다. 연구기획 단계부터 지재권을 염두에 두고 지재권 창출을 견인하는 지재권,R&D 연계를 확산시키기 위한 거시적 전략이 기본계획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산학협력을 활성화해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비즈니스와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전 부총리=지식재산에 대한 전문인력 확보가 중요하다. 삼성전자 LG전자는 지식재산이나 특허 전문 인력을 별도로 육성하고 있고,포스텍 KAIST도 관련 교육과정을 따로 두고 있는데 이런 노력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

▼이 회장=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은 지식재산 소송 관할을 한 곳으로 집중하고 있는데,우리는 특허법원과 일반법원으로 이원화돼 있어 비용과 기간이 과도하게 소요된다. 의뢰인이 희망하면 특허침해 소송에서 변리사와 변호사를 공동 선임할 수 있게 하는 '공동대리 제도' 역시 밥그릇 싸움 때문에 도입되지 못했다. 큰 틀에서 정비돼야 할 당면 과제다.

▼사회=성공적인 '지식재산 사회'로 가기 위한 요건은.

▼윤 회장=대기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지식재산 중시 경영 패러다임'이 중소기업에도 퍼지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단순 제조나 저부가가치 상품만 생산하는 데 치중할 게 아니라 스스로 투자하고 지식재산을 일궈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주고,특히 중소기업들이 애로를 겪고 있는 특허 관리와 보호부문에서 제도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100만달러 수출탑이 있는 것처럼 특허출원을 많이 한 회사에 '대한민국 특허대상' 같은 것을 시상하는 방법도 괜찮다고 본다.

정리=정소람/이준혁 기자 soram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