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요금 인하가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춘다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정치권 생색내기용으로 변질되고 있다. 정부와 통신업계 간 협의가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8일 당정 협의차 방문한 신용섭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만나 "정책위의장이 (요금인하 방안을) 언론을 보고 알면 되겠느냐.당 요구사항도 제대로 반영이 안된 상태로 밀어붙이면 국회에서 뒷받침할 수 있겠느냐"고 몰아세웠다. 또 "기본료는 인하하고 가입비는 폐지하라"는,사실상 업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안을 강하게 주문했다.

한나라당이 이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방통위 안이 통신업계 입장을 너무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방통위 방안의 골자는 요금인가사업자인 SK텔레콤이 가입비와 기본료를 단계적으로 내리도록 유도하고 KT와 LG유플러스가 따라가는 것.가입비의 경우 1년에 1만원씩 내려 3,4년 후 폐지하는 안이 논의됐다.

방통위는 SK텔레콤을 상대로 요금인하를 강력 권유하고 있지만 통신료는 수도요금 전기요금 등과 같은 공공요금이 아니어서 강제로 내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업계가 거절하면 강제할 권한이 없다. 그동안 통신업계는 가입비와 기본료 인하 · 폐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부담이 크다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방통위의 야당 측 상임위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야당 측 양문석 위원은 "왜 방통위가 한나라당 정책위와 협의를 하느냐.방통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방통위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한나라당 측과 당정 협의를 했으나 야당 측 상임위원들이 반발하면서 난처한 상황에 내몰렸다.

통신요금 인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선뜻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여론이 비등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개입이 지나치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개연성이 다분하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투자 여력이나 수익성을 따져보지 않고 국민에게 생색낼 생각만 하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