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 투자자들이 경기 변동에 따른 영향이 덜한 방어주 중심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제 유가와 금속 등 국제 상품 가격이 급락한 것도 이 같은 투자 전략 변화에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까지만 해도 시장을 주도하던 에너지 관련주들이 급격히 퇴조하고 수도 전기 가스 등 유틸리티와 헬스케어 및 필수 소비재 관련주들이 뜨고 있다고 보도했다. S&P 500 기업들의 업종지수를 보면 올 들어 3월까지 에너지 주식은 16% 급등한 반면 헬스케어 주식은 5% 오르는 데 그쳤다. 이후 헬스케어 주식은 8.8% 상승한 반면 에너지 주식은 6.9% 하락했다. 헬스케어 종목은 올 들어 14% 상승해 1998년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JP모건체이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경기관련주보다는 방어주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각종 경제 지표에 비춰볼 때 하반기 글로벌 제조 분야에서 재고 조정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도 리서치 보고서에서 전반적인 기업 수익성이 떨어지는 가운데 경기 방어주 등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에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상당수 월가 투자전략가들도 경기 회복기를 거쳐 확장 국면에 들어서면 대체로 경기방어주들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최근의 주식 투자 전략 변화는 당초 예상보다 미국 경기 회복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데다 6월 말 통화당국이 양적완화 조치를 종료한 이후 시장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는 이날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3.3%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5월 뉴욕주 제조업 지수도 11.9로 지난달 21.7에서 크게 떨어졌다. 5개월 만에 최저치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중국 통화당국의 긴축정책이 글로벌 경기 회복세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보수적인 투자 행태를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잔 로이스 JP모건체이스 자산배분담당 책임자는 "중국 정책당국자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확고한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상품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경기 민감주와 함께 중소형 종목들에 대한 투자도 시들해졌다. 경기 회복 초기에만 해도 시가총액 규모가 작은 중소형주와 운송주들의 주가 상승률이 시장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소형주의 주가 움직임을 반영하는 러셀2000지수는 최고점에 달했던 4월 말에 저점 대비 150% 급등했다. 이후 3.3% 하락해 시장 평균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 항공 철도 선박 회사 등 20개 운송 관련 업체로 구성된 다우존스 운송지수도 이달 들어 2.5% 하락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 불확실성은 소프트 패치(경기 회복기 중 일시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불과한 만큼 에너지와 기술주 등이 다시 각광받을 것이란 반박도 없지 않다. 헤지펀드인 SAC캐피털어드바이저의 스티븐 코언은 최근 에너지주의 투매를 매수 기회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CNBC도 이머징 국가의 탄력적인 경기 회복과 선진국들의 경기회복세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에너지 등 상품 관련주들의 전망이 밝다고 보도했다.


◆ 소프트 패치

soft patch.경기가 회복 국면에서 일시적 침체에 빠지는 현상.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 경제는 라지 패치(large patch)가 아니라 소프트 패치에 빠진 것"이라며 처음 사용했다. 라지 패치는 골프장 페어웨이 가운데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한 부분을 말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