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신 다음 액셀을 힘껏 밟으세요. "(드리프트 스쿨 지도자)

"부웅! 부웅! 앙앙!!"

지난 14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의 F1(포뮬러원) 국제자동차경주장.다음날인 15일 한국타이어 주최로 열린 '2011 한국 DDGT 챔피언십 2라운드'를 앞둔 참가선수들과 차량으로 시끄러웠다. 이들과 함께 상설경기장 한 쪽에서도 제네시스 쿠페 10여대와 인피니티 G37S 등이 굉음을 내며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도는 '원돌이'를 하고 있었다. DDGT 경기와 함께 진행되는 '드리프트 스쿨'에 참가한 차량들이었다. 참가자들은 현직 레이싱 선수들의 지도를 받으며 이날 오전부터 오후 5시까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드리프트 기술을 배웠다. 기자도 이날 참석했다. 드리프트(drift)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표류'다. 말 그대로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것으로 자동차 마니아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드리프트는 '피겨스케이팅'

오전 8시30분에 드리프트 스쿨 참가자 15명이 F1 브리핑룸에 모였다. 나이는 20대부터 30대 후반까지,직업도 학생부터 증권사 직원 등으로 다양했다.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강상규 씨(28)는 "공부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차를 타고 달리곤 한다"며 "이번에 멋진 기술을 배워보고 싶어 대구에서 4시간을 달려왔다"고 말했다.

대회 진행을 담당하는 MK레이싱컴퍼니의 이맹근 사장은 "드리프트는 차를 이용해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기술로 모터스포츠계의 피겨스케이팅"이라며 "유럽에서 시작된 자동차와 자동차 경주 역사 중 아시아에서 처음 시작된 경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국내 자동차 레이싱 1세대로 '한국 드래그 레이스(400m의 직선 코스에서 두 대의 차가 동시에 달려 순발력과 속도를 겨루는 경기)의 전설'이자 드리프트를 처음 국내에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사장은 "일본의 레이싱 선수인 츠치야 케이치가 드리프트 기술로 인코스를 파고들며 1위를 제치면서 사람들에게 드리프트가 알려졌고 2000년대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게 됐다"고 설명했다. 츠치야에게는 '드리프트킹'의 일본식 발음인 '도리킹'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교육은 부산의 레이싱팀인 '모비벅스' 팀원들이 맡았다. 이 팀의 김상진 선수는 화이트보드에 원돌이와 8자돌이,J턴 등을 그림으로 설명했다. 원돌이는 차가 드리프트로 미끄러지면서 원을 그리는 것이고, 8자돌이는 이 같은 원을 두 개 그리는 것이다. J턴은 드리프트 기술로 코너를 돈 뒤 '와리가리'라고 불리는 지그재그 주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뒷바퀴에 연기나며 바닥에 자국 남아

교육이 시작됐다. 선수들이 드리프트 시범을 보이자 굉음과 함께 뒷바퀴에서 연기가 나면서 바닥에 까만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이처럼 드리프트는 타이어 마모가 심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교육용 새 타이어를 장착했다. 타이어 교체도 직접 해야 해 기자 역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했다. 나사를 풀고 타이어휠을 뺀 후 운반하고 교체된 타이어를 낀 휠을 다시 차량에 장착하는 교체 작업을 하고 나니 두 손이 시커멓게 변했다.

타이어 교체 후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기자는 BMW528 차량으로 참석했다. 하지만 아뿔싸,후륜구동 차량이면 가능하다는 주최 측의 설명과 달리 BMW528은 '능동형 안전장치(DSC)'가 작동해 스스로 차량 미끄럼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DSC를 해제한 뒤에도 차량이 미끄러졌을 때 핸들 동작이 제어되는 등의 안전장치로 인해 선수들조차 드리프트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안전을 위한 기술이 드리프트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셈이다. 기자 역시 두 시간여를 꼬박 원돌이에 도전한 뒤에야 겨우 성공을 맛볼 수 있었다. 힘들었던 만큼 기분은 짜릿했다. 소위 '폭주족' 출신으로 일반도로에서 이미 드리프트를 시도했었던 일부 참가자들은 쉽게 성공해 8자돌이에 들어갔고 우수생 3~4명은 J턴도 시도했다.

◆시속 150㎞로 급거브 주행

오후 3시에는 경기장을 직접 달려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경기장에는 긴팔과 긴바지, 장갑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입장할 수 있다. 30분 동안 6바퀴가량을 돌았다. 보는 것과 달리 급커브에서 도로를 벗어나지 않고 달리는 것이 힘들었다. 더운 날씨에 각종 안전장비를 착용한데다 시속 150㎞ 이상으로 달리느라 긴장감이 더해지니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교육은 오후 5시가 조금 지나 끝났다. 다음 드리프트 스쿨은 다음달 말 진행될 예정이다. 참가비는 교체용 타이어값을 포함해 30만원이며 자신의 차량을 가져와야 한다. 후륜구동 스포츠 쿠페차량으로 수동변속기가 장착돼 있는 차량이 다루기 수월하다. 참가신청은 한국 DDGT 챔피언십 홈페이지(http://www.ddgt.co.kr)에서 하면 된다. 모비벅스의 김상진 선수는 "드리프트와 같은 기술도 전문가들의 지도로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배우면 사고가 날 위험이 훨씬 적다"며 "취미 삼아 드리프트 스쿨에 참가했다가 매력에 빠져 전문 레이서의 길로 뛰어든 이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영암=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