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부 당국자 "고문 역할론 입증" 주장
美유력지 "근거 없어…끈질긴 정보수집의 힘" 반박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계기로 테러 혐의자로부터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고문'의 정당성 논란이 미국내에서 다시 확산되고 있다.

빈 라덴 사살이 발표된 직후 보수주의자들이 "빈 라덴을 잡는데 부시 행정부 시절 가혹한 신문기법이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자 뉴욕타임스(NYT)가 5일 사설을 통해 이를 반박하고 워싱턴포스트(WP)도 6일 고정필진 칼럼을 통해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승인으로 신문기법으로 활용되다 오바마 행정부들어 금지된 물고문의 일종인 이른바 워터보딩(waterboarding) 등의 역할론이 부상한 것은 부시 행정부 당시 9.11 테러를 기획한 혐의로 체포된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실마리 정보를 제공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부터이다.

모하메드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운영하는 비밀수용소에서 183차례 '워터보딩' 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문 역할론은 전 CIA 대테러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다.

모하메드가 생포됐던 2002~2005년 당시 CIA 대테러센터장을 지낸 호세 로드리게스는 이번주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를 통해 "빈 라덴 사살은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강화된 신문기법을 금지시키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드리게스는 지난해 테러 용의자에 대한 신문과정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고의로 파기했던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법무부 고문변호사로 고문이 정당하다는 법률적 토대를 제공했던 존 유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빈 라덴 사살은 워터보딩과 다른 가혹신문기법이 정당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3일 테러 용의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많이 이뤄진 관타나모 수용소의 존재 가치를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들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입지를 얻어가며 고문 역할론이 고개를 들자 뉴욕타임스는 5일 '빈 라덴 죽음 이후 고문을 정당화하는 노력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NYT는 "실제로 불법수용소에서 이뤄진 고문을 당한 수감자로부터 빈 라덴을 찾는데 유용한 것으로 입증된 정보가 나왔다는 분명한 근거는 없다"며 고문 역할론의 전제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했다.

실제로 워터보딩을 무수히 당한 9.11 테러 기획자 모하메드도 허위정보만 진술했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설사 일부 단서들이 CIA 고문을 통해 나왔다고 하더라도, 법과 도덕적 기준을 위반한 부시 행정부의 결정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문을 통해 나온 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왜 부시 행정부가 수년전에 빈 라덴을 잡지 못했느냐"고 반문하면서 "고문은 비도적적이고, 불법적일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도 하다"고 역설했다.

WP도 6일 칼럼니스트 유진 로빈슨의 칼럼에서 "빈 라덴의 은신처를 발견한 것은 고문때문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끈질긴 정보수집 노력과 지칠 줄 모르는 탐색작업, 그리고 부수적인 행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빈슨은 고문은 잘못된 것이고 불법적이라며 "고문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가 전통적인 신문방법을 통해서는 획득할 수 없다고 증명할 수 없다"며 정보 획득수단으로서 고문의 비교우위 주장을 반박했다.

설사 과거 테러 용의자들로부터 빈 라덴을 찾게 되는 단서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가 고문 기법을 통해서 나왔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 당국자는 CNN 인터뷰에서 "빈 라덴을 잡는데 고문은 별로 기여한 바가 없다"며 "실제로 과거 고문을 당했던 테러 용의자 모하메드 등이 진술한 빈 라덴 연락책은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도 고문 역할론을 입에 담고 있지만 2008년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 4일 상원 청문회에서 리언 파네타 CIA 국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후 "내가 본 어떤 정보도 워터보딩과 같은 기법이 빈 라덴을 찾아낸 정보 수집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NN은 분석기사에서 "빈 라덴의 파키스탄 안가는 6년전에 지어졌고, 그때는 가혹한 신문기법이 왕성히 이용될 때였지만 빈 라덴 안가 정보는 결코 얻지 못했다"며 "이제 그 안가는 사라졌지만, 고문 논쟁은 계속 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