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 뇌물을 받고 대출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된 제일저축은행의 예금 인출 사태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출 대기 번호표를 받은 고객이 아직 많고 저축은행 및 금융감독원에 대한 불신이 여전해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6일 제일저축은행 및 금감원에 따르면 이날 가락본점을 포함한 이 저축은행의 6개 지점에선 470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제일2저축은행(160억원)을 합하면 이날 하루 총 630억원이 인출됐다. 이는 지난 4일 1000억원의 63% 수준이다.

금감원과 제일저축은행은 예금자들의 불안감이 휴일을 지나면서 한풀 꺾여 인출 규모는 더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기 번호표를 받아간 고객 가운데 다시 제일저축은행을 찾아 예금을 인출하는 비율도 이날 오전 60~70%에서 오후 들어선 20~30%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제일저축은행은 예금 인출에 따른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저축은행중앙회의 담보 한도 차입을 이용,2000억원을 차입하기로 했다. 자기자본(2334억원)의 85%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른 저축은행들도 지원에 나섰다. 솔로몬저축은행 등 서울 소재 자산 규모 기준 10대 저축은행들은 1000억원씩 출자해 제일저축은행에 1조원 규모의 신용공여한도(크레디트라인)를 조성하기로 이날 합의했다. 충분한 유동성 공급만이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지점별로 대기 번호표를 받은 고객이 1000~2000명을 넘어선 데다 이날도 방문 고객들의 격한 항의가 이어져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일저축은행 측은 금감원 및 예금보험공사와 함께 지점별로 예금자 보호제도에 관한 설명회를 여는 등 고객의 불안감을 달래느라 안간힘을 썼으나 각 지점에선 고객들이 "내 돈 내놔라"라고 고함을 지르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하루 여의도지점에선 500명이 넘는 고객이 대기 번호표를 받아 갔다. 4일 1800번대까지 번호표가 나간 상황이라 이날 번호표를 받은 고객은 오는 18일 이후에야 예금을 찾을 수 있다.

고객들은 금융감독 당국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보였다. 제일저축은행에 몰린 예금자 가운데 상당수는 "부산저축은행처럼 사전 부정 인출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며 불신을 드러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