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ㆍ일 '亞 금융패권' 싸고 치열한 힘겨루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치앙마이 기금 독립성…중국ㆍ일본 신경전
한국, 채권시장 활성화 방안…日 반대로 '선언적 합의' 그쳐
한국, 채권시장 활성화 방안…日 반대로 '선언적 합의' 그쳐
동아시아의 금융 주도권을 놓고 한국과 중국,일본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일본을 처음 앞지른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 부상'에 걸맞은 금융 주도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반면 일본은 이미 확보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지난 4일 열린 제14차 아세안(ASEAN)+한 · 중 · 일 재무장관 회의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다자 간 통화스와프 체제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 다자화기금(CMIM)의 기능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일본의 반대로 '비연계 자금' 확대 무산
아세안+3 재무장관은 1200억달러인 CMIM의 규모를 2배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CMIM의 역할을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최종 합의에는 중국이 강력하게 요구했던 사항이 빠졌다.
중국은 장관 회의에 앞서 열린 실무자 및 차관급 회의에서 CMIM 자금 중 20%인 비연계 자금의 비중을 30~40%로 높이자고 주장했다. 현재 CMIM 자금은 80%(960억달러)의 연계자금과 20%(240억달러)의 비연계 자금으로 구성돼 있다. 연계 자금은 외환위기에 빠져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에 지원하는 자금이고,비연계 자금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무관하게 CMIM 자체 결정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이다.
중국은 CMIM의 금융위기 해결 및 예방 효과를 높이고 아시아권에서 자국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비연계 자금의 비중을 늘리려 했다. 그러나 일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장관급 회의의 의제로 올라가지 못했다. 비연계 자금의 비중을 높이면 회원국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반대 논리였다.
일본은 CMIM의 독립성이 높아지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패권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국제 금융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 등 서방 선진국과 IMF의 입김도 작용했다.
◆한국 주도 RSI '선언적 합의'
CMIM의 위기 예방 기능을 도입하면 IMF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방적 구제금융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위기 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조사 ·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관은 IMF밖에 없다. CMIM의 IMF 의존도가 높아지면 결국 미국에 이어 IMF 지분율 2위인 일본에 유리하다.
한국이 2003년 제안한 아시아 채권시장 발전 방안(ABMI)도 일본의 반대로 큰 진전을 못보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ABMI와 이를 뒷받침하는 역내 증권결제기구(RSI) 설립 방안에 대한 논의는 'RSI의 경영 타당성에 대해 검토하기를 기대한다'는 선언적 합의에 그쳤다.
한국은 동아시아로 유입되는 자본의 활용도를 높이고 글로벌 신용경색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나 유럽으로 자금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시아 채권시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엔화가 기축통화의 성격을 갖고 있어 이 같은 목적의 채권시장 활성화에 미온적이다. 일본은 또 아시아 채권시장을 통해 역내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한다.
하노이=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