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의 인종분리 정책에 맞서 대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남부를 돌며 시위를 벌인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 운동이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프리덤 라이드 운동은 지난 1961년 5월 모든 인종의 학생들이 흑백 인종차별에 항거하기 위해 남부 일대를 기차나 버스로 여행하며 연좌농성을 벌인 시민불복종운동으로, 흑인 민권운동의 한 획을 그은 사건.

남부지역의 흑백차별에 항거하기위한 첫 프리덤 라이드 버스가 워싱턴 D.C.를 떠난 것은 1961년 5월초의 `어머니의 날'. 당시 13명의 학생들은 장거리 고속버스인 `트레일 웨이즈 버스'를 타고 D.C.에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까지 장거리 일정속에 남부로 향해 10여일 만에 앨라배마주 애니스턴과 버밈행에 도착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탑승한 버스는 버밍햄 등에서 폭도들의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여 불에 타버렸고, 일부 학생들은 구타와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올해 68세로 애틀랜타에 거주중인 찰스 페르손씨도 당시 18살의 나이로 모어 하우스 컬리지에 재학하다 이 버스에 탑승했던 13명중 한명.

페르손씨 등 버스에 탑승했던 인종차별 철폐 시위대는 버밍햄의 버스 정류장에서 또 다시 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그는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프리덤 라이드 운동가들은 당시 인종주의자들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400여명 이상으로 불어났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주 등 남동부 지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했다.

미시시피주정부는 프리덤 라이드 운동가 300여명을 `평화 침해'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또 테네시 주정부는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을 퇴학조치하기도 해 나중에 학생들로 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운동가들은 다만 애틀랜타에서는 별다른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결국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같은해 9월 `주간(州間) 상업위원회'를 통해 주를 횡단하는 장거리 여행 버스에서의 흑백차별을 철폐하도록 했다.

당시 이 운동에 참여했던 에모리대 신학대의 버나드 라파예트 교수는 "프리덤 라이드 운동은 미국 전역에 남부에서 어떤 인종차별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렸고, 미국민들에게 차별 철폐를 위해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