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FRS(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이 본격 도입된 첫 '어닝시즌'은 상장사 뿐 아니라 상장사를 평가하는 증권사에도 혼란을 불러왔다.

증권사들은 IFRS을 적용한 실적 추정치를 못내 기존 K-GAAP(한국회계기준)으로 추정치를 제시하는가 하면, 일부는 기업의 IFRS 실적을 기존 K-GAAP으로 산정된 추정치와 비교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라는 애널리스트조차 IFRS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어 투자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투자 판단에 나설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차,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실적 산정

지난 28일 증시에서 가장 큰 관심은 현대차의 실적발표였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한 배경에는 자동차 및 그 부품 업체의 주가 상승이 있었고, 현대차는 그 선봉에 섰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실적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1분기 현대차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조8000억원을 상회했다. 평소 분기마다 수 천 억원대 이익을 기록한 것과 견주면 조 단위, 그것도 2조원에 육박하는 이익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차의 이번 실적에는 예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 IFRS를 적용해 산정한 첫 분기 실적이란 점이다. 현대차는 삼성 LG 등의 대기업과 달리 IFRS를 조기 도입하지 않고 올해부터 반영했다.

기존 K-GAAP과 IFRS 간 가장 큰 차이는 연결 대상이 되는 자회사의 범위다. 이전까지 현대차 실적에는 기아차 현대하이스코 현대위아 등 우량 자회사가 모두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 분기 첫 IFRS로 실적이 산정되면서 이들 자회사는 모두 연결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분이 50% 미만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전까지는 포함하지 않던 앤지비 현대카네스 등의 덩치가 작은 자회사가 실적에 포함됐다.

IFRS에는 연결 자회사 기준이 50% 초과다. 만약 50% 미만인데 연결에 넣으려면 실질지배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현대차는 이번 1분기 기아차 등 58개사를 제외했고, 23개사를 포함했다.

현대차는 이렇게 연결 범위에 포함된 자회사 실적을 매출부터 이익까지 모두 100% 합산해 이번 분기 실적에 산정했다. IFRS 연결 실적에서는 지배주주가 될 경우 지분이 51%든 100%든 상관 없이 실적을 100% 반영한다. 지분 60%인 자회사가 1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면 과거엔 6억원만 지분법 이익으로 잡았지만, 연결에서는 10억원 모두를 순이익에 넣는다.

다만 지분 20~50%의 자회사는 과거와 같이 지분에 비례해 이익을 반영하는 지분법 이익으로 산정한다. 현대차의 경우 이번에 연결에서 제외된 기아차 현대하이스 현대위아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컨센서스는?

하지만 증권사들이 그간 내놨던 1분기 현대차의 실적 추정치는 이러한 부분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이달 11일 E 증권사가 발간한 현대차 보고서를 예로 들어보자.

이 증권사는 현대차의 1분기 추정 매출액과 순이익으로 각각 9조1407억원과 1조4890억원을 제시했다. K-GAAP 기준이다. 현대차의 1분기 실제 매출은 18조2334억원, 영업이익은 1조8275억, 당기순이익은 1조8768억원으로 이 추정치보다 한참이나 많았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현대차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잣대가 K-GAAP과 IFRS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손익계산서의 윗단인 매출액 부분은 연결 기준 자회사의 변경으로 전혀 다른 내용이 됐다.

물론, 현대차의 실적은 절대적으로 매우 좋았다는 평가가 많지만, 비교 대상으로서 증권사 실적 추정치는 이번 어닝 시즌에 별 역할을 못했다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그간 현대차 실적을 추정했고, 이는 비단 현대차에 국한하지도 않는다. IFRS을 조기 도입하지 않은 거의 모든 회사가 이런식으로 평가됐다. 사정이 이러니 기업 실적이 막상 발표됐어도 평가의 척도가 되는 컨센서스(증권사 예상치 평균)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최근 증권사 보고서들을 보면 '시장 컨센서스 대비 이익이 몇 퍼센트 많았다'는 식의 내용은 찾기 힘들다. 바뀐 회계기준임에도 불구하고 '이정도면 매우 훌륭한 실적이다'는 따위의 표현이 많다.

증권사들은 IFRS 분기 실적이 나오면 다시 K-GAAP으로 바꿔 컨센서스와 맞춰보는 작업도 하고 있다. 기준을 하나로 맞추는 것이다. 실제 지난 27일 실적을 발표한 기업은행의 경우 상당수 증권사가 K-GAAP으로 바꿔 컨센서스와 비교했다.

H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아예 이마저도 하지 않고 K-GAAP으로 된 컨센서스와 맞춰 "기업은행 순이익이 컨센서스보다 14%나 많았다"고 했다. 외국계인 도이치증권은 "이전 실적과 비교하긴 힘들지만"이란 단서를 단 뒤 "작년 4분기에 비해 확연히 뛰어나다"는 다소 막연한 '관전평'을 내놨다.

◆"기본적 작업도 않고 무작정 실적 추정"

물론 애널리스트들도 할 말은 있다. 실적 추정의 근간은 기업에서 제공하는 자료인데, 자료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은행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는 "IFRS가 적용되면서 은행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인 대손충당금 산정 방식이 경험손실률로 바뀌었다"며 "경험손실률은 과거의 경험치를 기반으로 고객 등급을 나누는 작업 등을 해야 하는데 은행에서 이러한 자료를 받아 보는 것은 힘들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은 "솔직히 IFRS로 당장 기업 실적 추정치를 모두 내놓긴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 나름 기준을 만들어 역사적 데이터를 쌓고, 이 데이터를 근간으로 실적을 일일이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근창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결 대상만 같다면 회계기준에 상관없이 손익계산서의 맨 끝단인 순이익에 큰 차이가 없다"며 "다만 그 순이익이 지배주주지분 계정인지, 비지배주주도 포함돼 있는지를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데 애널리스트 상당수가 이런 기본적인 작업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