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고유업종' 선정 5년만에 부활…"더 넓혀야" vs "효과없다"
"대기업은 과거 정부 주도의 재정 · 금융 · 세제 지원에 힘입어 성장했으면서도 현재 중소기업에 대해선 경쟁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성호 백천세척기 대표)

"한국보다 중소기업 보호 제도가 적은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중소기업 대국으로 성장했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본부장)

22일 오후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 업종 · 품목 가이드라인 안을 발표한 뒤 열린 공청회에서는 적합 업종 · 품목 지정 자체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동반위는 이날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기준을 시장규모 1000억~1조5000억원으로 정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지정된 업종과 품목을 3년씩 최대 6년 동안 보호해주기로 했다.

공청회는 곽수근 서울대 교수의 진행에 따라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실무위원),임상혁 전경련 본부장,조유현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한철영 삼성전자 금형개발혁신센터 수석연구원,임성호 백천세척기 대표,조병선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중소기업 적합 품목 선정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제도'는 2006년 폐지된 고유업종제도와 유사한 제도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는 1979년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됐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과보호로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아 폐지됐다.

과거 고유업종제도와 이번에 새로 도입하려는 적합품목 선정제가 다른 점은 대기업의 진입제한 자율성 부분이다. 과거 고유업종제는 당시 상공부가 법적으로 대기업의 업종 진입을 금지했다. 반면 이번 적합 품목 선정은 주체가 민간위원회인 데다 보호 방식도 법적인 강제성을 띠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업들이 받는 압박감은 이전과 다를 게 없다. 이날 공청회장을 찾은 쌍용레미콘의 한 임원은 "형식만 자율 규제이지 기업 이미지가 핵심인 대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강제 조항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밀어낸다지만 레미콘업계에선 시장개척이나 기술개발 모두 우리가 먼저 이뤄놓으니 뒤이어 중소기업들이 진출했다"며 "지금도 중소기업 보호정책으로 정부발주사업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는데 중기 적합업종으로까지 선정될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적합 업종 선정은 출하량을 기준으로 시장 규모가 1000억원 이상 1조5000억원 미만인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 시장에 참여한 중소기업 수도 10개가 넘어야 한다. 이들 품목 가운데 △중소기업 적합성 △부정적 효과 방지 △중소기업 경쟁력 등을 따진 뒤 대상 품목이 정해진다. 세부적으로는 종사자 비중,소비자 만족도,협력사 피해 여부 등의 항목을 기준으로 심사가 진행된다.

◆찬반의견 팽팽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중소기업 측은 지금까지 정부 지원을 받아 커온 대기업들이 이제 와서 중소기업에 '공정 경쟁'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임성호 대표는 "현재 이동통신,반도체,철강 등 주요 산업 모두 한두 기업의 독과점 상태"라며 "대기업은 정부 지원을 받아 성장했지만 지금 중소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작은 중소기업과 지금의 링에서 싸우는 것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의 틀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기업 측은 이번 가이드라인으로는 부작용이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상혁 본부장은 대 · 중소기업의 구분 기준이 사각지대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상호출자제한집단을 기준으로 하면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속하지 않은 대기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중소기업법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면 중소기업을 벗어나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근로자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그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물러나야 하는 대기업의 근로자들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장은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바깥에서 의자를 구해 앉았으며 일부 사람들은 맨 뒷줄에 서서 토론회를 지켜봤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