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마골프계의 '캡틴'으로 불리는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선친인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에 이어 2003년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영국왕립골프협회(R&A) 회원이 됐다. 올 1월 회원 승인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보다 8년 먼저 'R&A' 타이틀을 달았다. 2007년부터 아시아 · 태평양골프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74년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지금도 평균 74~76타의 실력에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 265야드를 자랑한다. 20일 그를 만나 R&A와 골프 얘기를 들어봤다.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로 명성이 자자하던데요.

"요즘 아마고수들은 프로들보다 더 자주 라운드하고 연습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력에 비해 매너가 부족해요. 골프만 잘 치면 존경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골프 실력으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매너가 훌륭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진정한 골퍼라고 생각합니다. "

▼어떻게 R&A 회원이 됐습니까.

"2000년 마스터스골프대회를 보러 갔는데 거기서 당시 토미 리 아 · 태골프연맹 회장(말레이시아)과 콜린 필립스 부회장(호주)을 알게 돼 친해졌어요. 둘 다 R&A 회원인데 '왜 한국에 R&A 회원이 없느냐'며 나를 추천했습니다. "

▼추천을 받아도 절차가 까다롭다던데.

"최소한 두 명 이상이 추천해야 합니다. 추천이 들어오면 심사위원회에서 결격 사유를 검토하지요. 골프 지도자 역할을 하고 골프 보급에 기여해야 합니다. 1년여간 클럽에 사진을 걸어 놓고 회원들이 보이지 않는 심사도 해요. 또 라운드하면서 매너와 룰에 대한 지식 등을 체크합니다. "

▼이재용 사장도 그런 절차를 거쳤나요.

"그랬을 겁니다. R&A 회원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회원이 추천하는 것과 위원회가 1년에 한두 명 세계 골프 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을 선정해 선발하는 거죠.회원들이 추천했다면 영국 회원들이 했을 겁니다. 이 사장이 삼성전자 영국지사를 오가며 자연스레 친분을 쌓았을 거예요. 3년 전인가,그때 나는 회원이 된 지 5년이 지나지 않아 추천 자격이 없었는데,R&A가 'J.Y. Lee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왔어요. 그래서 사업도 잘하고 골프 열정이나 매너가 훌륭한 젠틀맨이라고 적극 추천했습니다. "

▼이 사장과 라운드한 적은.

"사촌동생이 이 사장과 친구여서 5년 전 라운드할 기회를 가졌고 이후 서너 차례 더 했습니다. 이 사장은 나와 스크래치로 플레이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데다 드라이버샷 거리도 5야드나 더 나가요. 룰이나 매너 모두 흠잡을 데 없습니다. R&A 회원이 된 뒤 전화를 걸어와 축하 라운드를 한 번 하자고 하더군요. 3년 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디 오픈이 열리면 함께 가자고도 했죠."

▼올해 마스터스 초청을 받았다던데.

"아 · 태골프연맹 회장이 된 뒤 오거스타 관계자들과 친해졌습니다.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가 아시아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지원하고 우승자도 초청하지요. 초청받은 사람들은 마스터스가 열리기 전 주말에 회원들과 라운드하는데 내년에는 가 볼 생각입니다. "

▼기억에 남는 명문 골프장은.

"스페인의 발데라마골프장이 가장 아름답더군요. 일본에서는 오사카와 고베 사이에 있는 히로노 골프장이 훌륭합니다. 유명하진 않지만 후지산 근처에 있는 나루자와골프장도 인상적이에요. 매년 찾아갈 정도죠.국내에서는 동래베네스트골프장을 좋아합니다. "

▼'명문' 스탠퍼드대 출신인데 타이거 우즈,미셸 위도 동문이죠.

"1970년 9월 경영대학원(MBA)에 입학했습니다. 스탠퍼드는 당시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골프 대회를 휩쓸었어요. 톰 왓슨이 심리학과 4학년이었으니까 참 옛날이지요. 교내에 골프장이 있었는데 미국 100대 골프장에 들 정도로 좋았어요. "

▼필립 나이트 나이키 창업자와의 인연은.

"그 분이 10년 선배죠.친구를 통해 만났고 나이키가 한국에서 신발을 만들 때 가까워졌어요. 한국에 오면 우리집에서 잘 정도였죠.그 인연으로 한국나이키 사장도 하고 필립 모리스 담배도 수입하게 됐습니다. 당시 담배사업을 따내기 위해 큰 기업들이 경쟁했으나 그의 추천으로 제가 따낼 수 있었죠."


◆ 아마고수 허광수 회장의 팁 "완벽한 스윙보다 자신만의 스윙을"

아마추어로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허광수 회장은'주말 골퍼'들에게 '싱글'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실 일을 하는 사람이 싱글이 된다는 것은 본업을 잘 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 바람직하지 않지요. 85타에서 90타 정도를 치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습니다. 80타 이하를 친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

그는 아마추어들의 스윙 교정과 관련해 "입문 초기에는 잘 배워야 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스윙을 가져야 한다"며 "연습을 하지 않고 1~2주에 한 번 정도 라운드를 나가더라도 핸디캡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스윙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너무 완벽한 스윙은 연습을 안 하면 망가져 버립니다. 그러면 80타를 쳤다가 100타를 치기도 하고 들쭉날쭉해지잖아요. 자신의 몸에 맞는 스윙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스윙을 바꾸려면 최소한 석 달은 날마다 수백개 이상의 공을 쳐야 해요. 그런데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 "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