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단계업체들은 빠져나가고 양질의 방문판매업체들만 칼을 받게 됐다. "

공정거래위원회의 방문판매법 개정안에 대해 방판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직접판매협회와 화장품협회,건강기능식품협회,출판경영자협회 등은 이번 주 중 국회 법사위 의원들에게 개정안 통과를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기로 했다. 녹색소비자연대 등도 방판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업계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양질의 방판업체들을 옥죄고 영세 판매업체와 소비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판법 개정안은 방판과 다단계로 이원화돼 있는 현행 제도를 방판,후원방판,다단계의 3단계로 나누고 후원방판업체들에 다단계 이상의 규제를 가하겠다는 내용이다. 업계는 전체 방판업체(대리점 포함) 2만8754개 중 3분의 2가 넘는 2만여곳이 후원방판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3개월 매출의 최대 40%를 공제조합에 납부해야 하며 소비자 판매 내역,판매 책임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전산과 녹음 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 또 160만원을 넘는 제품은 판매가 금지된다. 이 법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를 통과해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법사위는 이르면 이번주 개정안을 상정,심의할 예정이다.

업계가 가장 반발하는 부분은 매출의 일부를 공제조합에 납부토록 하는 조항이다. 직접판매협회는 대리점당 평균 1억원가량을 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최대 1조원 규모의 공제조합을 만들어 피해 소비자에 대해 보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공제조합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미 다단계 부문에 직접판매공제조합,특수판매공제조합 등이 있고 출자금 · 담보금이 1100여억원에 달하지만 연간 보상액(2008년 기준)은 4억3000만원에 불과하다. 영세 대리점들에 부담만 지우고 실제 피해 보상은 미미하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불법 다단계업체들은 공제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판경영자 협회 관계자는 "대리점 사업자 대부분이 주부나 은퇴 직장인으로 영세하다"며 "이들을 공제조합에 가입시키고 '매월 최종 매출 50%의 소비자 판매 여부 입증(옴니트리션)' 시스템 구축,통화 녹음 설비 구축 등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물리면 연쇄도산과 폐업이 잇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공제조합 설립에 대해 "공정위의 자리 만들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다단계판매 보증을 전담하는 2개 공제조합의 이사장은 관례적으로 공정위 출신이 맡아왔다.

160만원어치 이상 제품의 판매 금지도 논란거리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이 자석매트 등 저가 제품을 가져다 비싸게 판매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는 게 개정 취지다.

하지만 직판협회 관계자는 "이들 업체는 고가 제품 판매를 금지하더라도 나눠팔기 등의 방식으로 이를 피할 수 있다"며 "결국 정수기 등 검증된 고가 제품의 판매를 막아 방문판매 시장 활성화만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방판법 개정안이 벌금형을 받으면 3년 이내에 해당 업체 임원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업계는 "불법 다단계업체들은 대부분 명의만 빌려주는 속칭 '바지사장'이 맡고 있어 양질의 방판업체들만 위축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방문판매

현행 방문판매법은 후원수당(업체가 판매원들에게 주는 각종 수당)의 범위에 따라 방문판매와 다단계를 구분한다. 방판업체는 하위 판매원의 판매성과가 바로 윗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개정안은 방판기업이더라도 판매층이 3단계를 넘어서면 '후원방판'으로 인식해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