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 공대를 나온 이모씨(30)는 지난해 봄 S대기업을 그만두고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시험(MEET)을 준비했다. 회사 생활 2년차에 연봉 4800만원을 받았지만 치대를 나온 사촌형이 개업한 지 3년 만에 서울 반포동에 중대형 아파트를 사고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게 부러워 의대를 가기로 결심했다.

올해 전남의 한 의전원에 합격한 그는 의사로서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2년 전 정년 퇴임하고 친구 회사에서 자문역을 해주는 이씨의 아버지(58)는 한숨만 나온다. 노후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앞으로도 몇 년을 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공계 출신 인재들의 의전원 진학이 늘면서 산업현장에서 일할 기술인력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공계 연구기반이 황폐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올해 MEET 지원자 수는 지난해(6433명)에 비해 23%가량 늘어난 7899명으로 집계됐다. 처음 신입생을 받은 2006년(1467명)보다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임정기 서울대 의대 학장은 "의전원제도를 도입할 때는 자연과학,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운 전공자가 의학과 시너지를 내서 신약 · 의료기기 개발에 기여할 것을 기대했다"며 "하지만 의전원 출신들은 대부분 졸업 후 개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지적했다.

인기학과 '쏠림 현상'도 의 · 과학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K대 의전원에 다니는 양모씨(30)는 "'피 · 안 · 성(피부과 · 안과 · 성형외과)','정 · 재 · 영(정신학과 · 재활학과 · 영상의학과)' 등 인기학과에 매년 상위 1% 학생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그는 "실력을 갖춘 최상위권 학생이 피부과 등 일부 학과에만 가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덧붙였다.

정종호/심은지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