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직원들 사이에선 '막강 차장'이란 말이 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 입사한 간부직원들을 일컫는 말로,유난히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무슨 일이든 시키면 해낸다는 뜻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올해로 입사 14년차인 이들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장기 안식 휴직을 해야했던 불운의 세대였다. 회사는 이듬해인 1999년,해를 넘겨 휴직 중이던 '중고(中古) 신입사원'들을 재고용했다. 그때 형성된 회사와 직원 간의 유대감은 아시아나항공이 숱한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위기에 강한' DNA

항공산업만큼 리스크에 자주 노출되는 업종은 많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1988년 창사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겪더니 2001년 미국 9 · 11테러,2003년 사스(SARS ·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객 수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부 변수들이 끊이지 않았다.

면허사업이라는 항공업 특성상 후발주자가 겪어야 하는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대한항공이 선발 항공사로서 미국 등 수익이 많이 나는 노선을 독점하는 동안 아시아나는 복수 취항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복수 취항이 이뤄졌다고 해도 운항 편수와 시간대 등에서 불리한 여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승객 입장에선 대한항공에서 쌓은 마일리지가 소진될 때까지 아시아나를 이용할 이렇다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어려움을 뚫고 성장을 거듭했다. 2004년 매출 3조원을 돌파한 이래 작년엔 5조7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2004~2007년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612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2.1%로 선발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능가했다.

◆환율 · 유가의 벽을 뛰어넘다

후발주자의 핸드캡이 아시아나항공을 분발하게 만든 촉진제가 됐다. 승객을 모으려면 남다른 차별적 경쟁력이 필요했다. 1994년 11월 세계 항공업계 최초로 ISO9002 품질인증을 획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당시 항공업계에선 한국의 조그만 민항사가 항공업무 전반에서 국제표준규격을 받은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1995년 1월에는 세계 항공사 중 처음으로 전 노선에서 금연을 실시했다. 2000년 6월13일엔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남북한 특별기를 처음으로 운항했고,2003년 3월1일엔 최대 세계 항공 동맹체인 스타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면서 글로벌 항공회사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글로벌 항공업계 전문가들도 이 같은 아시아나항공의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 2009년에 '항공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ATW의 '올해의 항공회사'상을 탔고,작년 2월과 5월엔 각각 스카이트랙스로부터 5성 항공사,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됐다.

차별화된 서비스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이 주력한 또 한 가지는 비용 절감이다. 특히 유가와 환율 변동에 취약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혔던 터라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5년 8월 헤지 프로그램(위험회피)을 도입했다.

매분기 달러 및 항공유 소요량의 일정 비율을 선물시장에서 구입함으로써 구매 단가를 과거 2년간의 시장 평균 선물 가격으로 고정시켰다.

덕분에 한창 고유가로 경영환경이 악화일로를 걷던 2008년 상반기에 아시아나항공의 환관련 손실은 147억원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대한항공이 519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중국 특화 항공사의 이점

아시아나항공이 중국 등 근거리 노선에 특화돼 있다는 점도 향후 미래를 밝게 볼 수 있는 근거로 꼽힌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대표적인 수익 노선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천~베이징 노선의 경우 아시아나가 24회로 대한항공의 18회보다 훨씬 많다. 조만간 개설 예정인 김포~베이징 셔틀 노선 역시 대한항공의 참여가 불투명해 아시아나항공이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김포~베이징 주 14회 노선을 모두 배정받을 경우 연간 158억원가량의 추가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포~베이징 노선은 2009년 1월 중국 하이난섬에서 열린 한 · 중 양국 간 항공회담에서 노선 개설에 합의했고,그 뒤 수차에 걸친 양국 정부 간 회담에서 합의 사항을 재확인했다.

대한항공은 김포~베이징 노선 개설에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으며,수차에 걸친 국토해양부 주재 양사 공식 및 비공식 회의에서 아시아나항공만 김포~베이징 노선을 운항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지진으로 인한 매출 감소다. 일본 노선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4분기 기준으로 여객은 23.5%, 화물은 6.5% 수준이다. 원전 피해가 악화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5월 초에 있는 일본의 연휴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며 "5월 가정의 달과 연휴 기간에 즈음해 여행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고,실제 5월의 경우 일본 노선에 대한 예약이 점차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가 항공사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아시아나항공에는 부담이다. 차별화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에 최신형 항공기인 A380을 도입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과제로 아시아나항공이 고유가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호주 콴타스항공이 진행하고 있는 생물연료 비행기 개발이 좋은 사례"라며 "아시아나항공도 항공운송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업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