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재미교포 B모씨(47 · 여)는 2009년 7월 한국 여행길에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갑상샘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B씨는 미국에서 개인 건강보험에 가입해 거의 무료로 수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한국을 다시 방문해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로봇 수술을 받았다. B씨는 "한국의 의료시설 수준이 미국 병원보다 훨씬 높아 신뢰감을 생겼고 의료진과의 의사소통도 더 원활해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재미교포들 가운데 건강검진과 수술을 받으려고 한국을 찾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이들을 유치하려는 국내 대형 병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이 없는 데다 한국식으로 몸 전체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병원으로는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이 4파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2008년 11월 국내 대학병원으로는 처음 LA사무소를 열고 환자 유치에 들어갔다. 이어 지난해 2월 서울성모병원이 LA지사를 열어 국제진료센터 소속 장도명 교수(성형외과 전문의)를 대표로 파견했다. 석 달 뒤에는 서울아산병원이 현지 협력 여행사인 아주관광에 직원을 파견했다. 세브란스병원도 현지 여행사인 삼호관광에 간호사를 두고 환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 밖에 고려대의료원과 인하대병원이 환자 모집에 적극적이다.

서울대병원은 한인타운 근처인 윌셔가 3699번지에 사무소를 두고 한국 출신 현지 간호사 2명을 고용해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LA사무소를 통해 한국에 '의료관광'을 다녀온 사람은 2009년 829명(외래환자 48명 · 건강검진 781명)에서 2010년 1049명(외래환자 105명 · 건강검진 944명)으로 27% 늘었다.

이 사무소는 서울대 동문 출신이 경영하는 현지 의원 30곳,동문 이외 의사가 대표인 의원 7곳 등 총 37곳과 협력관계를 맺고 1차 진료에서 이상 증후가 보이는 사람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미주 서울대 의대 동창회를 활용하는 한편 LA에서 발행하는 한국신문에 광고를 내고 검진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제휴해 항공권 예매 등 원스톱으로 서비스한다.

서울성모병원은 진출 첫해에 300여명의 환자를 유치했는데 올 들어서는 상담 실적이 3배까지 늘어 고무적이다. 세브란스병원은 남성은 왕복 항공권 포함 3849달러,여성은 4199달러에 건강검진 상품권을 판매하는 광고를 현지 신문에 거의 매일 싣는 등 공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일반 건강검진(General Screening)'부터 '고급 건강검진(Premium Screening)'까지 다양한 구색을 갖춰 1699~4599달러의 의료관광 상품을 광고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LA사무소의 박애니스 소장은 "미국에는 MD앤더슨암센터,존스홉킨스병원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지역병원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장비도 한국 수준만 못하다"며 "한인 등 중산층에겐 한국 병원이 의료기술도 좋으면서 가격(미국의 절반~3분의 2 수준)도 적당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상당수 종합병원이 적자를 내면서 신규 투자를 미루고 있다. 국내 유수 대학병원은 128채널 CT와 3.0T(테슬러) MRI가 보편화했고 256채널 CT도 적잖게 도입한 상태지만 미국 LA의 웬만한 중소병원은 최근에야 64채널 CT와 1.5T급 MRI가 도입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백인 등 미국인 주류사회에서 한국 의료의 우수성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 태국 싱가포르 인도 등은 한국보다 10년 이상 앞서 의료관광에 눈을 떠 국가적으로 환자 유치를 위한 홍보전을 펼쳤지만 한국은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가 의료관광 에이전시를 장악,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주기적으로 의료관광 국가 이미지를 알리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반면 한국은 각 의료기관이 산발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다.

LA에 가장 먼저 진출한 서울대병원도 최근에야 영문 홈페이지 구축을 준비하는 등 현지화가 지지부진하다. 국내 의사들 가운데 교수를 포함,미국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도 소수에 불과해 현지에서 합법적인 의료행위를 하는 데 제약이 있다.

박 소장은 "정부가 한 · 미 의사면허 교류,해외 파견인력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지원 및 체류기간 연장(비자 개선),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민 · 관 펀드 조성 등의 지원에 나서야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주류 의학계의 반대가 거세겠지만 고비용 의료시스템에 불만을 품은 미국 중산층 서민들도 많은 만큼 틈새를 끈질기게 공략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