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C해운회사 사주 K 회장은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선박 160여척을 소유하면서 국제 선박 임대업 및 국제 해운사업을 벌였다. 그는 국내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경영을 하면서도 국내 거주 장소를 숨기고 경영활동 흔적을 노출하지 않는 수법을 사용해 조세피난처 거주자(한국 비거주자)로 위장했다.

또 영업 운항 등 해운사업의 중요한 관리 및 상업적 의사 결정을 국내에서 수행해 세법상 내국법인인데도 형식적인 대리점 계약을 맺어 외국법인으로 위장했다. 이런 방법으로 조성한 9700억원가량의 소득을 조세피난처에 은닉하다 국세청으로부터 4101억원을 추징당했다. 역외탈세 단일 징수액으로는 사상 최고다. K 회장이 소유한 C해운의 총 자산은 10조원을 넘고 개인자산만도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세피난처에 소득 은닉

국세청은 올해 1분기 국내 비거주자 및 외국법인으로 위장해 조세피난처에 소득을 은닉한 사주 및 기업의 역외탈세 행위 41건에 대해 모두 4741억원을 추징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이는 작년 한 해 국세청이 적발한 역외탈세 규모 5000억원에 거의 육박하는 수치다. 올해 국세청이 1조원의 역외탈루 세금을 확보키로 한 점을 감안하면 석 달 만에 올해 목표치의 절반 가까이 달성한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그동안 자주 확인되던 해외투자 또는 해외 관계사를 통한 자금 유출뿐만 아니라 비거주자 · 외국법인 위장을 통해 대규모 소득을 은닉한 수법이 처음 적발됐다. 4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과세받은 K 회장은 조세피난처인 바하마에 사무실과 직원이 전혀 없는 회사를 설립,서류상 회사가 해운업을 실제 운용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홍콩에 별도의 해운회사를 다시 만들어 과세 당국의 눈을 철저히 피해왔다. 그는 국내에서 영업활동을 은폐하기 위해 휴대용 저장장치 및 구두 지시를 통해서만 경영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문수 국세청 차장은 "비거주자 · 외국법인으로 위장한 사례는 대한민국의 과세권을 원천적으로 벗어남은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려는 대담한 탈세 시도"라고 말했다.

◆무역거래 가장 등 다양한 역외탈세 수법

기계장치업체 대표 B씨는 구입하지도 않은 기계장치를 수입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법인세를 탈루한 후 이를 해외로 빼돌려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법인세 등 174억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합성수지 제조업체 대표 C씨는 해외 거래처에 직접 판매한 물품을 홍콩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판매한 것으로 위장하면서 세무 관리가 느슨한 홍콩으로 소득을 이전해 146억원이 과세됐다. 해외주식을 외국법인에 매각하고 양도소득세를 누락한 뒤 매각 대금으로 다른 외국법인 주식을 취득해 자산을 해외에 은닉한 D씨는 64억원을 추징받았다.

국세청은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 가입,미국과 동시범칙조사 약정 체결 등 국제공조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역외탈세 관련 조직 및 인력을 확충,조사 역량을 강화한 결과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는 한국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6개국으로 구성된 탈세정보 교환 협의체다. 동시범칙조사는 두 나라에 경제적 거점을 가진 탈세 혐의자를 동시에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