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등장직후부터 독자행보 vs 子 품속생활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이 지난 6개월간 2인자로서 입지를 다져가는 과정은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 승계과정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연합뉴스가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던 1980년 10월의 6차 당대회 이후 3년간의 노동신문을 살펴본 결과 김 위원장은 등장 이후 고(故) 김일성 주석과 별도로 '실무지도'에 나서는 등 독자적 영역에서 활동했다.

아들 김정은은 공식 등장 이후 캥거루처럼 아버지의 품속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 뚜렷하게 대비된다.

그러나 후계자에게 형식적으로 낮은 서열을 부과했다가 점차 끌어올리는 식으로 '권력세습'에 대한 비난을 무마하는 전략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일 따로 실무지도…아들은 `품속 생활' = 김 위원장이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의 과정을 김정은과 비교했을 때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은 '독자성'이다.

김정은이 지난해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공식 등장한 이후 부친의 공개활동 수행단으로만 북한 매체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식 등장 이후 간간이 행사 기념사진에만 등장하던 후계자 김정일은 약 10개월 뒤인 1981년 8월9일 평양교예극장 배우들이 새로 창작한 공연을 관람했다는 기사로 노동신문 1면에 나타난다.

이어 며칠 뒤인 8월17일에는 완공단계에 들어선 빙상관을 실무지도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실무지도라는 표현으로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와 명확히 구분했지만, 김정일 역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리종옥 총리 등 실세들을 수행원으로 거느리고 아버지처럼 과업도 제시한다.

당시 노동신문의 구성을 보면 김 주석의 동정을 전하는 기사가 1면 좌측의 머리기사로 들어가 있고 그 우측에 나란히 김정일 기사가 들어간 가운데 김정일의 이름도 김 주석처럼 굵은 글씨체로 표기돼 독자적 영역을 가진 2인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김 주석의 현지지도 보도에 김정일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다.

6차 당대회 이후 3년간 김 주석의 현지지도나 공연관람 관련 보도에 김정일이 언급된 것은 너댓 차례에 불과해 부자(父子)가 '따로' 활동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1981년 5월 심창완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정치국장이 사망했을 때는 김정일이 당과 군의 간부를 거느리고 조문했고, 그해 8월엔 평양에서 열린 '쁠럭불가담(비동맹) 및 발전도상국 토론회' 행사장에 등장해 외교무대에 나서는 등 후계자로서 독자 활동이 부각됐다.

또 1983년 9월 중국의 당과 정부 대표단이 방북했을 때는 김정일이 만찬을 따로 주최하기도 했다.

이처럼 후계자 김정일에게 부친과 구별되는 영역이 부여된 것은 당시 김 주석을 중심으로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여러 사회주의 국가와 연대 속에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었고 김정일 역시 오랜 후계수업으로 권부 내에 입지를 다진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심각한 경제난 속에 탈북자가 속출하는 데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마저 대두한 지금 형편에서는 김 위원장의 건재를 최대한 과시하면서 20대의 '어린 후계자'를 그늘에 두는 방식이 안전할 수 있다.

더구나 후계자 등장 이후 김 주석 사망시까지 '두 개의 태양'이 뜬 상황을 15년 가까이 경험해야 했던 김 위원장으로서는 자신의 후계수업을 되돌아보며 제2의 태양이 뜨는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서열 점진적 높이기로 `세습비난 무마' 유사 = 6차 당대회 주석단 앞줄 끄트머리에 앉은 사진으로 공식 등장을 알린 후계자 김정일은 이후 천천히 부친 옆으로 이동한다.

행사 기념사진이나 주석단에서 오진우 등을 사이에 두고 김 주석 부근에 앉던 김정일은 1982년 10월 인민군 군사학교 교원대회 기념사진 촬영부터는 비로소 부친 옆자리에 앉는다.

공식 등장 당시엔 대회집행부 호명 순서에서 김일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리종옥, 오진우 뒤에야 거명되던 김정일은 최현 장의위원회 명단에서는 리종옥을 제치더니 강량욱 사망 때는 김일마저 앞질러 김일성 수행단의 첫 자리를 꿰찬다.

김정은 역시 차근차근 2인자에 걸맞은 좌석과 호명순위를 찾아가고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영림 내각 총리, 리영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다음에야 이름이 나오던 김정은은 지난달부터 리영호와 최영림을 차례로 밀어내고 부친 바로 다음으로 점차 이름을 옮기고 있다.

공식행사 사진에서도 김정은은 리영호를 사이에 두고 김 위원장 옆에 앉아있지만 '선례'를 감안하면 조만간 바로 옆자리까지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후계행보 속도만 비교하면 김정은이 아버지보다 빠른 편이다.

호명순위 말고도 후계자로 공식등장한 이후 중국을 방문하는 데 김 위원장은 약 3년이 걸렸던 반면 김정은은 6개월 만의 방중이 유력래 보이는 상황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자신의 건강이나 북한의 경제사정 등을 고려할 때 최대한 자신의 건재를 내외에 부각하고 후계자에게는 자신의 그늘 아래서 점진적으로 독자적 권한을 주는 것이 낫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