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비행금지 구역설정 논의는)너무 늦었다. 우리는 48시간 내에 모든 상황을 끝낼 것이다.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7일(현지시간)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표결을 할 것이라는 유로뉴스 리포터의 말에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 세이프 알 이슬람은 코웃음을 치면서 이렇게 응수했다. 서방국들의 어떤 제재도 이제는 리비아 내전의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 2월 말 리비아의 반(反)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비화될 때만 하더라도 상황은 사뭇 달랐다.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통제권을 상실했고,서방 국가들은 카다피와 측근 세력의 자산을 동결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지금 리비아 내전은 카다피 측의 승리로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카다피군은 중부 석유 도시들을 차례로 탈환한 데 이어 16일에는 시민군의 마지막 근거지인 벵가지에 공습을 감행했다. 외신들도 "(카다피군에 의한) 대량 학살이 우려된다"며 시민군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전황이 180도 바뀐 데는 서방 국가들의 무기력한 대응이 한몫했다. '금수 조치''군사적 개입'은 화려한 말잔치였을 뿐이다. 석유 판매자금은 여전히 카다피 주머니로 흘러들어갔고,군사적 개입은 서로 눈치만 보다 흐지부지됐다. 수세에 몰린 시민군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절박하게 요구했지만 유엔은 내전이 끝나갈 때가 돼서야 투표를 하는 등 각국은 주판알 튀기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은 바레인 사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당초 바레인 시위대의 개혁 요구에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군대를 파견하고 바레인 정부가 탱크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는데도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있다.

지금 국제사회는 미국 독주의 시대에서 벗어나 빠르게 다원화되고 있다. 그러나 리더십을 가진 나라나 주도세력이 없다 보니 힘의 공백과 무질서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리비아와 바레인 사태는 그런 국제사회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태완 국제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