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참혹한 상황에는 말을 잊게 된다. 그러나 삶은 이어지는 것이고 부득이 우리는 계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경제적 후폭풍을 시나리오별로 정리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일본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순히 수출에서 6%, 수입에서 15.1%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동북아 경제의 부품 공급기지다. 이 지역의 국가 간 수직계열화는 일본에서 출발,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밸류 체인을 연결해 놓고 있다. 소위 서플라이 체인이다. 수입 15.1%는 중국으로 열린 대부분 수출액의 중핵 부분을 구성한다. 대중국 수출에서 올리는 수입은 실은 대(對)일본 수입에 부가가치를 더한 것에 불과하다. 무역흑자는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금융은 다시 엔캐리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도요타 소니 도시바가 일본 전역의 공장을 무기한 폐쇄했다는 보도는 비상한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수백만의 일본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쟁기업들이 상대적 수혜를 볼 것이라는 생각은 단순 계산이다. 서플라이 체인의 붕괴는 복잡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과는 '경쟁과 협력'의 양면이 있다고 할 때 경쟁구도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협력체제는 무너지는 것이다.

지진이 발생한 지난 주말 엔화가 2% 가까운 급등세를 기록한 것이나,어제의 도쿄증시 폭락이 앞으로 어떤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만들어 낼지 예측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주목받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1997년에 일어났던 아시아 외환위기는 그 상당부분이 1995년 1월17일 고베지진으로 촉발되었던 엔화 대이동의 결과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마땅하다. 동남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 수위가 급격하게 낮아졌고 결국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태국 바트화가 주저앉았다. 한국이 외환위기에 몰렸던 1997년 말까지 해외로 탈출한 2백억달러 대부분이 엔캐리 자금이었다.

엔화가 고베지진 이전부터 꾸준히 강세통화였다는 점도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림에서 보듯이 엔화는 지진 이후 3개월을 더 강세로 나가 결국 그해 4월19일 역사적 고점인 79엔을 찍었지만 1997년 말에는 140엔대까지 다시 밀려났다. 일본 주가와 환율 예측에 실패해 베어링스 은행이 문을 닫았고 엔화에 떠받쳐 거품을 만들었던 동남아 자산시장은 이후 3년 동안 꺼져내렸다. 한국은 무역적자를 높다랗게 쌓았다. 당시 미국의 강(强) 달러 정책만이 지금과 다른 상황이다. 환율은 당시의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지만 다른 길로 들어설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급격하게 확대될 변동성이다. 일본의 경제적 위상은 싫건 좋건 간에 아시아 번영의 밑천이었다. 일본의 재앙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작은 계산보다 큰 계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