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세계 최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제조업체인 웨스턴디지털(WD)이 3위 업체인 히타치의 HDD 부문인 ‘히타치GST’을 인수했다. 글로벌 HDD 시장 판도가 급변할 것이란 분석이다. HDD 시장에서 5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의 수익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WD는 이날 공식 성명을 통해 히타치GST에 현금 35억달러와 8억달러 규모의 주식 2500만주을 지불하는 등 총 43억달러에 히타치를 인수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히타치GST는 웨스턴디지털의 지분 10%를 보유하고, 이사회에 2개의 자리를 확보하게 됐다. 이번 인수는 양측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올 3분기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생존 위한 윈·윈 전략

WD의 히타치GST 인수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HDD 시장 규모가 매년 줄어들면서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세계 HDD 출하량은 전분기 대비 4% 감소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도시바를 필두로 HDD를 대체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위 업체인 WD와 2위인 시게이트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HDD 업체들이 적자 상태다.

이에 따라 HDD 업체들의 인수·합병(M&A)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애런 레이커스 스티플니콜라우스 애널리스트는 “HDD는 성장 산업이 아니다” 며 “M&A는 관련 업계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WD는 이번 히타치GST 인수를 통해 2위인 시게이트를 멀찍이 따돌릴 수 있게 됐다. WD는 지난해 4분기에 총 5220만개의 HDD를 출하, 시게이트(4890만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히타치GST는 3030만개로 3위였다. WD와 히타치GST의 출하 물량을 합치면 시게이트의 두배를 웃돌게 된다.

볼프강 니클 WD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이번 인수를 통해) WD는 M&A 비용을 제외할 경우 종전 대비 최소 1% 이상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스티브 밀리건 히타치GST 최고경영자(CEO)는 4년여 만에 친정으로 복귀하게 됐다. 밀리건 CEO는 WD에서 수석부사장 및 CFO를 역임하다가 2007년 히타치GST에 영입된 바 있다.

◆삼성전자 수익 빨간불 켜지나

이번 인수가 삼성전자 수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HDD 시장에서 WD 시게이트 히타치GST 도시바에 이은 5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를 통해 WD뿐 아니라 시게이트가 반사 이익을 얻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합병으로 WD와 시게이트와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됐다. 그러나 휴렛팩커드(HP), 델(Dell) 등 컴퓨터 제조업체들의 공급선 다변화가 이 같은 손실을 어느 정도 상쇄할 것이란 지적이다.

HDD 주요 고객들이 독점 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대신 공급 다변화를 선택하면서 시게이트의 출하량이 증가할 것이란 얘기다. 고객들 입장에서 공급선을 다변화하면 공급 가격을 협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HDD 시장은 향후 WD와 시게이트의 양강 체제로 더욱 굳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 HDD 사업 전망에 빨간불이 켜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에 HDD는 고민거리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낸드플래시 제조업체다. HDD를 대체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 기반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HDD와 SSD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HDD 시장 규모가 감소해야 SSD 시장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부 밑에 메모리 부문과 스토리지시스템 부문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SSD와 HDD를 생산하고 있다. 한 지붕 아래에서 경쟁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고민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