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로 교수 "컴퓨터 전공 응용 서울대에 투자자문사 세웠죠"
"서울대에 오셔서 컴퓨터연구소를 찾으세요. "

작년 3월 설립된 옵투스투자자문을 어떻게 찾아가면 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문병로 옵투스자문 대표(50)의 답변이다. 대부분 여의도나 강남에 자리잡은 다른 투자자문사와 비교해 위치부터 이색적이다. 대표가 현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이고,서울대 학내 벤처로 설립했기 때문이다.

공대 교수가 왜 투자자문사를 차렸을까. 지난 4일 서울대에서 만난 문 교수도 "교수가 무슨 주식투자 회사를 세웠느냐는 질문을 지인들에게 많이 받았지만 전공인 최적화 이론의 가장 복잡한 응용단계가 주식거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식거래는 회사 재무제표 항목부터 거시경제 지표까지 수백가지 변수를 모두 감안해야 하고 투자수익률로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최적화 이론이란 문제 해결을 위해 컴퓨터가 스스로 가장 알맞은 해(방법)를 찾게 하는 것이다. 수학의 대표적인 난제로,2001년 문 교수가 풀어 세계적인 화제가 된 '외판원 순회 문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영업사원이 100개 도시를 도는 최단거리를 구할 때 단순한 방법으론 슈퍼컴퓨터라도 10조년 넘게 걸린다고 한다. 문 교수는 컴퓨터가 무수한 해결방법을 스스로 생산한 뒤,최적의 방법을 찾도록 해 수십분 만에 3038개 도시를 경유하는 경로를 구했다.

문 교수가 2001년부터 개발해온 투자 및 매매 알고리즘은 주식 현물이 대상이다.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이 된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주로 선물 · 옵션 등 파생상품에 집중하는 것과 다르다. 때문에 초단타매매(HFT · high frequency trading) 등 거래 회전율이 높은 파생 알고리즘과 달리 한 번 매입한 종목은 최소 3개월에서 1년 이상까지 보유한다.

문 교수는 "가격 · 거래량만 기초로 하는 파생상품 알고리즘은 너무 단순해 도전할 매력을 못 느낀다"며 "현물거래 알고리즘은 복잡한 만큼 진입장벽도 높아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알고리즘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2009년 2월부터 실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현재 수탁액은 80억원이다. 지난달 말까지 2년간 수익률은 114.03%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63.37%)을 크게 상회했다. 재무제표가 중요한 매매 근거이다보니 옵투스자문은 일부 우량주에 집중 투자하는 대형 자문사들과 전혀 다른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오히려 가치투자펀드의 편입 종목과 일부 겹치기도 한다.

옵투스자문은 이르면 오는 6월께 자문형 랩어카운트 상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문 교수는 "3개 증권사와 논의를 진행 중이며 상품 출시를 위한 법적 절차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컴퓨터는 사람이 판단하기 힘든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데다 감정을 배제하고 수치만을 근거로 냉정하게 매매한다"며 "미국에서 알고리즘 매매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주식시장은 알고리즘 간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국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등 유명 알고리즘 투자회사들과 경쟁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 알고리즘 트레이딩

algorithm trading.증권거래에서 종목 선정부터 매수 · 매도 시점까지 컴퓨터가 알고리즘(프로그램)에 따라 자동 수행하게 하는 거래기법.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일관적인 투자전략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적절성이 미흡할 경우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