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향해 핀 '미술관 꽃'…차가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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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발바오
금속으로 덮인 구겐하임 미술관
각도·빛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신
우주여행 떠나는 듯한 지하철
빌딩·다리 등 거리 곳곳이 예술품
금속으로 덮인 구겐하임 미술관
각도·빛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신
우주여행 떠나는 듯한 지하철
빌딩·다리 등 거리 곳곳이 예술품
캄캄한 밤하늘 아래 흰 비둘기의 날개 같은 빌바오 공항이 보인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잘 정돈된 북유럽의 느낌이다.
공항을 빠져나와 달리자 막 우주여행을 마치고 착륙한 듯한 거대한 물체가 눈에 어른거린다. 티타늄으로 뒤덮인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사진과 영상으로 수없이 보았지만 눈앞에서 맛보는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메탈 플라워(금속으로 만든 꽃)'라는 별명을 지닌 이 건물은 3만3000여개의 티타늄 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금속으로 덮여 차가운 느낌일 것 같지만 강가의 주황색 조명을 몸 전체로 받아들여 따뜻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뽐낸다. 더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밤이 깊어 일단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빌바오의 구시가지에서 네르비온강가를 지나는 전차 트란비아를 타고 구겐하임을 다시 찾았다.
여러 번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했다.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이 건물은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오른쪽은 하늘을 향해 활짝 핀 목련꽃,왼쪽은 막 출항하려는 범선을 연상시킨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여인의 몸 같은 곡선에 홀린다. 자연광과 인공광에 따라 외관 전체가 빛을 뿜어내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하기 때문에 새벽 동틀 무렵부터 자정까지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아름답다.
◆도시를 바꾼 세기의 건물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기 전 빌바오는 그리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제철 · 철강 · 조선 사업으로 부를 누리던 이곳은 1980년대 사양길로 들어서면서 우중충한 회색 도시로 변해갔다. 게다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정치 ·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날씨마저 고약해 여행자들이 피해가는 곳이었다. 빌바오에 머무는 며칠 동안에도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바스크 지방정부는 빌바오를 몰락의 늪에서 구하기 위해 도시 재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1억5000만달러를 들인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프로젝트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지은 미술관이 1997년 개관했을 때는 유럽의 빌바오행 항공편이 모두 마비되기도 했다. 그후 지금까지 해마다 100만명이 다녀간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공업도시 빌바오를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격상시킨 것이다.
실내로 들어서니 왜 '빌바오에 가면 구겐하임을 보라'가 아니고 '구겐하임을 보러 빌바오에 가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천장의 흰색 곡선들과 여러 겹의 유리창살로 들어온 햇빛이 눈부시다. 아트리움이라고 불리는 중앙홀을 가장 먼저 만났다. 여기서부터 총 9917㎡가 넘는 공간,3개층 19개의 전시공간이 연결된다.
그중에서도 물고기나 비행기 날개 같은 피시 갤러리가 압권이다. 축구장만한 공간에 거대한 철판들이 구불구불 서있다. 황갈색으로 녹이 슨 4m짜리 강철판을 여러 겹으로 구부려 만든 리처드 세라의 조각 '더 매터 오브 타임' 시리즈다. 구겐하임의 건축형태와 이보다 더 완벽한 하모니를 낼 작품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겐하임 주변으로 건축 산책
오후의 구겐하임 풍경은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든다. 강아지와 함께 조깅하는 사람,강가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부부,데우스토대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자전거를 타고 노는 소년들까지 구겐하임과 시민들은 서로 생활의 일부가 되어주고 있다.
미술관 주변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제프 쿤의 꽃으로 뒤덮인 자이언트 강아지 '퍼피'가 입구에 서 있고 뒤쪽의 강변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가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이브 클라인의 분수 다섯 개가 물을 뿜어낸다.
빌바오에는 구겐하임 외에도 수준 높은 건축물이 많다. 곡선이 아름다운 수비수리 다리는 빌바오 공항과 함께 스페인의 대표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작품이다. ㄷ자 형태를 수평에서 기울이고 다리의 아치도 사선으로 기울인 채 바닥은 유리로 돼 있다. 일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가 설계한 트윈 타워는 수비수리 다리와 신비로운 조합을 이룬다.
빌바오의 지하철 역시 영국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1995년 완공한 하나의 예술품이다. 지하는 노출 콘크리트,지상은 둥근 유리 지붕으로 만들어 열차를 탈 때마다 우주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구시가지에는 호아킨 루코바가 1890년에 지은 아리아가 극장이 네오바로크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후안 크리소스토모 데 아리아가의 이름을 본떠 지었다. 샹들리에와 빨간 카펫으로 장식된 내부도 볼 만하다.
구겐하임과 주변 건축물을 다 감상했다면 모유아 광장에서 시작하는 신시가지 산책을 권한다. 파리와 닮은 방사형 도로가 뻗어 있다. 아반도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레스토랑과 바가 많아 사람들이 북적인다.
스페인의 유명 의류 브랜드인 자라 매장도 밀집해 있다. 모유아 광장에서 구겐하임 방향으로 뻗은 알라메다 레칼데 거리에는 크고 작은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즐비하다. 고가구를 파는 가게도 눈을 즐겁게 한다. 구시가지는 활기 넘치는 누에바 광장이 중심인데 전통 직물이나 공예품을 살 수 있는 상점들도 골목마다 숨어 있다.
빌바오(스페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 여행팁
서울에서 스페인까지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직항편을 이용하면 된다. 빌바오 직항편은 없다.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브뤼셀 등 유럽의 대도시에서 1~2시간 대기 후 환승하는 방법도 있다. 버스로는 마드리드에서 4시간30분,바르셀로나에서 7시간 걸린다. 빌바오의 주요 관광코스는 구겐하임 미술관 투어.월요일은 휴관이다. 빌바오의 옛 동네인 카스코 비에호 주변을 돌면서 빵 위에 절인 문어나 멸치를 올려주는 핀초스를 먹는 것도 재미다. 바칼라오(대구)의 아래턱 고기를 부드럽게 삶은 코코차스도 맛있다.
메트로 1호선으로 20분쯤 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비스카야 다리가 있다. 세계 최초로 곤돌라가 사람과 차를 실어나르는 이 운반교는 1893년 지어졌다. 아레타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겟소 지역에 다다른다. 작은 항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걸으며 바다 내음에 취해 보는 것도 좋다.
공항을 빠져나와 달리자 막 우주여행을 마치고 착륙한 듯한 거대한 물체가 눈에 어른거린다. 티타늄으로 뒤덮인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사진과 영상으로 수없이 보았지만 눈앞에서 맛보는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메탈 플라워(금속으로 만든 꽃)'라는 별명을 지닌 이 건물은 3만3000여개의 티타늄 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금속으로 덮여 차가운 느낌일 것 같지만 강가의 주황색 조명을 몸 전체로 받아들여 따뜻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뽐낸다. 더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밤이 깊어 일단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빌바오의 구시가지에서 네르비온강가를 지나는 전차 트란비아를 타고 구겐하임을 다시 찾았다.
여러 번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했다.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이 건물은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오른쪽은 하늘을 향해 활짝 핀 목련꽃,왼쪽은 막 출항하려는 범선을 연상시킨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여인의 몸 같은 곡선에 홀린다. 자연광과 인공광에 따라 외관 전체가 빛을 뿜어내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하기 때문에 새벽 동틀 무렵부터 자정까지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아름답다.
◆도시를 바꾼 세기의 건물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기 전 빌바오는 그리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제철 · 철강 · 조선 사업으로 부를 누리던 이곳은 1980년대 사양길로 들어서면서 우중충한 회색 도시로 변해갔다. 게다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정치 ·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날씨마저 고약해 여행자들이 피해가는 곳이었다. 빌바오에 머무는 며칠 동안에도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바스크 지방정부는 빌바오를 몰락의 늪에서 구하기 위해 도시 재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1억5000만달러를 들인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프로젝트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지은 미술관이 1997년 개관했을 때는 유럽의 빌바오행 항공편이 모두 마비되기도 했다. 그후 지금까지 해마다 100만명이 다녀간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공업도시 빌바오를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격상시킨 것이다.
실내로 들어서니 왜 '빌바오에 가면 구겐하임을 보라'가 아니고 '구겐하임을 보러 빌바오에 가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천장의 흰색 곡선들과 여러 겹의 유리창살로 들어온 햇빛이 눈부시다. 아트리움이라고 불리는 중앙홀을 가장 먼저 만났다. 여기서부터 총 9917㎡가 넘는 공간,3개층 19개의 전시공간이 연결된다.
그중에서도 물고기나 비행기 날개 같은 피시 갤러리가 압권이다. 축구장만한 공간에 거대한 철판들이 구불구불 서있다. 황갈색으로 녹이 슨 4m짜리 강철판을 여러 겹으로 구부려 만든 리처드 세라의 조각 '더 매터 오브 타임' 시리즈다. 구겐하임의 건축형태와 이보다 더 완벽한 하모니를 낼 작품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겐하임 주변으로 건축 산책
오후의 구겐하임 풍경은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든다. 강아지와 함께 조깅하는 사람,강가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부부,데우스토대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자전거를 타고 노는 소년들까지 구겐하임과 시민들은 서로 생활의 일부가 되어주고 있다.
미술관 주변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제프 쿤의 꽃으로 뒤덮인 자이언트 강아지 '퍼피'가 입구에 서 있고 뒤쪽의 강변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가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이브 클라인의 분수 다섯 개가 물을 뿜어낸다.
빌바오에는 구겐하임 외에도 수준 높은 건축물이 많다. 곡선이 아름다운 수비수리 다리는 빌바오 공항과 함께 스페인의 대표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작품이다. ㄷ자 형태를 수평에서 기울이고 다리의 아치도 사선으로 기울인 채 바닥은 유리로 돼 있다. 일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가 설계한 트윈 타워는 수비수리 다리와 신비로운 조합을 이룬다.
빌바오의 지하철 역시 영국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1995년 완공한 하나의 예술품이다. 지하는 노출 콘크리트,지상은 둥근 유리 지붕으로 만들어 열차를 탈 때마다 우주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구시가지에는 호아킨 루코바가 1890년에 지은 아리아가 극장이 네오바로크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후안 크리소스토모 데 아리아가의 이름을 본떠 지었다. 샹들리에와 빨간 카펫으로 장식된 내부도 볼 만하다.
구겐하임과 주변 건축물을 다 감상했다면 모유아 광장에서 시작하는 신시가지 산책을 권한다. 파리와 닮은 방사형 도로가 뻗어 있다. 아반도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레스토랑과 바가 많아 사람들이 북적인다.
스페인의 유명 의류 브랜드인 자라 매장도 밀집해 있다. 모유아 광장에서 구겐하임 방향으로 뻗은 알라메다 레칼데 거리에는 크고 작은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즐비하다. 고가구를 파는 가게도 눈을 즐겁게 한다. 구시가지는 활기 넘치는 누에바 광장이 중심인데 전통 직물이나 공예품을 살 수 있는 상점들도 골목마다 숨어 있다.
빌바오(스페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 여행팁
서울에서 스페인까지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직항편을 이용하면 된다. 빌바오 직항편은 없다.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브뤼셀 등 유럽의 대도시에서 1~2시간 대기 후 환승하는 방법도 있다. 버스로는 마드리드에서 4시간30분,바르셀로나에서 7시간 걸린다. 빌바오의 주요 관광코스는 구겐하임 미술관 투어.월요일은 휴관이다. 빌바오의 옛 동네인 카스코 비에호 주변을 돌면서 빵 위에 절인 문어나 멸치를 올려주는 핀초스를 먹는 것도 재미다. 바칼라오(대구)의 아래턱 고기를 부드럽게 삶은 코코차스도 맛있다.
메트로 1호선으로 20분쯤 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비스카야 다리가 있다. 세계 최초로 곤돌라가 사람과 차를 실어나르는 이 운반교는 1893년 지어졌다. 아레타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겟소 지역에 다다른다. 작은 항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걸으며 바다 내음에 취해 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