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 경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이 처음 논의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이었다. 이후 금융위기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구조개편 방안은 올해 농협 창립 50주년(8월15일)을 맞아 결실을 보게 됐다. 농협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면 농축산물 유통 · 가공 · 판매 사업이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자산 규모 200조원의 거대 금융지주도 새로 탄생하게 된다.


◆경제사업에 힘 실린다

농협 구조개편이 추진된 가장 큰 이유는 신용(금융)사업에 비해 경제(농축산물 유통 · 가공 · 판매)사업이 낙후됐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되는 신용사업 비중이 커지면서 농어민 지원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신 · 경 분리를 통해 각 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을 분리한 뒤 경제사업 중심으로 대폭 개편되기 때문이다. 경제지주에 원예 · 양곡 · 축산판매본부가 설치돼 판매 유통 등을 직접 관장하게 된다. 현재는 지역의 단위농협이 판매 유통 등을 책임지고 중앙회는 이를 지원하는 구조여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농협이 비축 · 가공 · 유통 · 판로 등을 책임지면 변동성이 큰 농축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어민들 입장에서는 확실한 판매 창구를 갖게 돼 지금보다 더 좋은 값에 농축산물을 팔 가능성이 높아진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배추값 파동 등으로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과 수급조절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농협의 경제부문 강화는 이 같은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 금융지주 출범

농협의 지주회사 전환은 초대형 금융지주 출범을 의미한다. 농협의 신용사업 부문은 약 1년간 계열사 분리 등의 준비 작업을 거친 뒤 금융 자회사들을 거느린 지주회사로 바뀌게 된다.

농협은행을 중심으로 신용사업 부문 자회사인 NH투자증권 NH투자선물 NH-CA자산운용 NH캐피탈 등이 금융지주로 편입된다. 현재는 중앙회 내부 조직이지만 분사돼 독립법인이 되는 NH보험 NH카드 등도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된다.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농협은행은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떨어지는 생산성 등을 개선하기 위해 대대적인 인사 등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NH보험은 기존의 생명보험 중심에서 자동차보험 등 손해보험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 30조원을 갖춘 NH보험은 삼성 · 대한 · 교보생명과 함께 보험업계 '빅4'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계 카드사로 안정적인 자금 조달이 가능한 NH카드 역시 카드업계의 다크호스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 관계자는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에 사업구조 개편 이후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등의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며 "농어민 금융지원도 한층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