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의 어느 날 밤.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북쪽 기슭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의 산로렌초 성당에서 360여년간 걸려 있던 그림 한 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짙은 암흑을 배경으로 성 로렌초,성 프란체스코 등의 성인들과 성모 마리아,날개 달린 천사가 바닥에 놓인 아이를 내려다보는 가운데 한 줄기 빛이 그들을 비추는 그림.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가 죽기 반 년 전 그린 '아기 예수의 탄생'이다. 도난 당시 80억리라(65억원) 상당으로 평가되던 이 그림은 이후 존재 유무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카라바조의 비밀》은 화가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혼을 재구성한 '팩션'이다. 소설도 실제 발생한 이 그림 도난 사건에서 시작한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열세 살 때 화가 수업을 시작해 콘타랠리 예배당에 그린 '성 마태오의 순교'와 '성 마태오의 소명'이 각광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권력자였던 델 몬테 추기경이 후원자로 나서고 로마 최고의 화가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전통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양식을 추구한 그는 악마적 화가,회화의 '반(反) 그리스도'라는 비판도 받았다. 길거리에서 만난 집시나 부랑자,창녀의 더럽고 초라한 모습을 성자나 예수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소설가인 작가는 동시대 화가들이나 스승의 전통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보다 인간적인,그래서 더욱 극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했던 카라바조의 열정과 예술혼을 장면마다 생생하게 되살렸다.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대표작들의 탄생 배경과 이유,당시 카라바조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독일 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는 1602년작 '승리의 아모르'를 그릴 때다. 그림을 주문한 고위 성직자는 카라바조가 싫어하는 경쟁자와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리게 해 경합을 벌이도록 했다. 카라바조는 사랑의 신을 그리면서 큰 날개를 단 나체의 청년이 식탁 모서리에 반쯤 걸터앉은 채 웃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성기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넣었다.

이 그림을 본 또 다른 후원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엉덩이의 별들은 알도브란디니 가문의 문장에 있는 것인데,혹시 교황 플레멘스 8세를 염두에 둔 건가요? 엉덩이 쪽으로 향한 아모르의 왼손이 그가 신체적인 욕구 후에 닦는다는 것을 의미하나? 이런 경멸적인 행동을 통해 아모르가 교황에게 맞선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러자 카라바조는 "저는 그림 속에서 아이러니와 정치적인 비판이 숨어 있는 것을 사랑하죠"라고 말했다.

소설은 여러 범죄에 연루되고,수감과 탈옥,도피의 삶을 살다 서른아홉에 요절한 카라바조의 삶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전개된다. 평생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어린 시절의 친구 파올라,카라바조가 첫 스승의 밑에서 도제생활을 할 때 그림을 배우기 위해 젊은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견디는 장면 등은 소설을 위해 설정한 허구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병든 바쿠스'나 '도마뱀에 물린 소년' 등의 작품에서 같은 얼굴의 소년을 반복해서 모델로 삼았고,후세 사람들은 이 모델이 동성애적 취향을 가진 카라바조의 조수였다는 추측을 내리고 있다.

신 중심의 세계관에 입각해 미술을 신앙심 고취의 도구로 활용하려던 시대적 분위기를 과감히 깬 바로크 양식의 선두주자 카라바조.이탈리아 지폐에 자신의 초상화와 작품들을 남길 만큼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정말 동성애자였을까.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