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경제지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다. 이것이 2만달러를 넘느냐 여부가 선진국 진입의 시금석이라도 되는 듯 지난 10수년간 우리는 이 개념에 집착해 왔다.

1년간 한 나라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부가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GDP가 기준이 되다보니 회사에서도 오로지 숫자에만 관심을 둔다. 매달 매분기 매반기 그리고 1년의 성과는 결국 얼마나 벌고 얼마나 남겼나 하는 숫자로 계산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개인들의 성공 여부도 이제는 숫자로만 평가된다. 어떤 집에 살며 어떤 차를 몰며 어떤 회원권을 갖고 있고 어떤 옷을 입는지.간단히 돈으로 환원되는 지표들로 남을 평가하고 자기를 평가한다. 그런데 과연 숫자가 모든 것인가. 1인당 GDP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기만적인가. 환율이 움직일 때마다 들쭉날쭉하니 말이다.

지금은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한 지그메 싱예 왕추크 전 부탄 국왕이 1970년대 10대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을 때 얘기다. 인도를 여행할 때 현지 기자가 그에게 부탄의 GDP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당시 그는 "왜 생산량 같은 것을 묻느냐.부탄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후 그는 대관식 때 외국 사절을 공식 초청하면서 부탄을 개방했고 GDP가 아니라 국가총행복(GNH)이라는 지표를 새롭게 내세우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부탄 같은 나라는 어차피 GDP로 경쟁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지표를 마련한 것이라고 폄하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들이 국민의 행복에 관심을 더 갖기로 한 것을 보면 이건 분명 글로벌 이슈다.

프랑스는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2명이 수년 전 사르코지 대통령의 지시로 18개월간 프랑스의 행복과 웰빙이라는 새 지표를 마련했다. 영국의 경우도 캐머런 총리 자신이 GDP는 잘못된 지표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GNH 지표를 개발 중이다.

선진국뿐 아니다. 중국의 경우도 행복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중국은 2011~2015년에 추진할 제12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제 GDP와 더불어 GNH도 중요한 지표로 삼기로 했다.

행복이 다시 중요한 지표가 되는 이유는 어쩌면 명백하다. 물질적인 풍요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이제 결정적인 지표는 정신적인 만족이 될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돼 정신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또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물질적인 비교가 너무 쉬워져 그렇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람보다 스스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금방 천국으로 변할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스스로 문제삼고 있는 단기성과주의를 여전히 글로벌 스탠더드로 생각하며 종업원을 기계나 숫자 취급하는 세태가 여전하다. 숫자는 관리하기는 쉬워도 직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만들어내는 '기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라 차원에서 개인의 행복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그것이 스마트 워크든 동반성장이든 무상급식이든 개헌이든 국민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 아닌지를 갖고 생각하면 답은 쉬워질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는 개인들의 행복을 높이는 방향에서 사업 기회를 잡는 것이 올해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10년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