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체 A사가 얼마 전 색다른 참고자료를 냈다. 자사가 아닌 다른 철강업체인 B사가 철강재 가격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B사가 제품 가격을 t당 5만원 올린다는 것이다. 올 들어 원료값 급등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곁들였다.

A사가 이례적으로 다른 회사의 가격 인상 자료를 낸 배경에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철광석 유연탄 등 원료값이 크게 올랐는데도 정부의 직 · 간접적인 가격 통제로 철강재 값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소 업체와 달리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이 큰 대형 업체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A사의 참고자료는 철강가격 인상의 불가피성을 에둘러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셈이다.

비슷한 시기,베트남발 외신도 철강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철강재를 포함해 전기 석탄 등 산업재 가격을 시장에 맡기겠다고 한 내용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말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쌀 육류 채소류는 물론 파급효과가 큰 철강재 시멘트 건자재 등의 가격 인상을 억제하겠다고 했지만,최근 이 같은 통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지 정부 관계자는 "생산자와 판매자,소비자들의 가격 결정권을 존중하고 그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시장경제라고 해서 정부 개입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국민경제적 후생효과가 더 크다면 어느 정도의 가격 통제나 감시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정부가 두부 커피 당면 등 소비재값 인상을 막은 데 이어 정유 철강재 등 산업재 가격까지 통제하고 나서는 양상은 '반(反)시장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기업들을 이렇게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게 물가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정책적 목표에 얼마나 부합할지도 미지수다. 일시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가격은 억눌린 만큼의 반등 탄력으로 다시 튀어오른다. 시장 흐름의 왜곡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시장을 통제할 수 있고,또 통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정부의 의식과 행태다. 우리 정부가 이제 막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베트남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장창민 산업부 기자 cmjang@hankyung.com